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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박근혜 발언’을 못 믿는 까닭 / 김종철

등록 2013-10-30 19:06수정 2013-10-31 14:11

김종철 기자
김종철 기자
느닷없는 대국민 담화였다. 누구도 국무총리한테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표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을 뿐이다. 박 대통령에게 줄곧 우호적인 조·중·동 등 보수언론조차 최근 이러한 대열에 합류했다. 이 정도면 박 대통령이 대응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28일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선 이는 정홍원 국무총리였다. 더구나 정 총리는 덴마크와 핀란드 방문을 마치고 불과 이틀 전에 귀국했다. 누가 봐도 청와대 주문에 의한 ‘대독 담화’였다.

일방적인 낭독만 하는 등 성의 없는 담화였지만, 내용 자체만 보면 진전된 측면이 없지 않다. “정부는 국정원 댓글을 포함한 일련의 의혹에 대해 실체와 원인을 정확히 밝히겠다”는 공개적인 언급은 이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기존 발언과는 차이가 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는 말만 거듭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실체가 어떤지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7월8일)고 대통령이 말한 적이 있지만, 당시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국정조사를 벌이는 국회였다. 국회에서 잘해보라는 덕담이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의 태도가 뒤늦게나마 바뀐 걸까. 재판이 끝날 때까지 “믿고 기다려 달라”는 정부의 말을 정말 믿어도 될까.

그러기에는 현 정권의 진정성이 너무 부족하다. 오히려 주변 정황은 정반대다. 우선 국정원 사건 특별수사팀을 지원했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옷을 벗은 데 이어 외압에 맞서던 윤석열 수사팀장까지 사실상 쫓겨났다. 윤 전 팀장이 누구인가.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 권력 핵심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선거법 적용을 관철하고, 끈질긴 수사를 통해 국정원의 트위터 대선 개입 혐의를 밝혀낸 핵심 인물이다. 국정원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한 최고의 전문가다. 특수수사로 잔뼈가 굵은 그의 자리는 공안통 출신이 꿰찼다. 공안 검사라고 수사를 안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무적인 판단을 앞세우는 속성상 앞으로 돌직구 수사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수사 외압보다 항명 혐의에 더 중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는 감찰도 수사팀 힘 빼기다.

이뿐 아니다. 여당인 새누리당 지도부는 검찰이 추가로 밝혀낸 국정원의 5만여건의 트위터 글 가운데 약 2500~3000건은 선거와 무관한 내용이라느니 1만5000건은 국정원 직원의 계정이 아니라느니 하면서 연일 수사팀을 공격하고 있다. 그런 내용은 검찰과 변호인이 법정에서 다툴 일이지, 여당 지도부가 나설 사안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몇 건이 됐든 간에 국가안보를 지켜야 하는 국정원이 대선 때 인터넷 댓글뿐 아니라 트위터 공간에서까지 국민을 상대로 정치공작을 했다는 점이다. 이런 본질은 외면한 채 일부 지엽적인 부분만 문제 삼는 것이야말로 국정원 범죄의 실체 규명을 막으려는 의도다. 이러한 공격에 앞장서는 사람은 최경환 원내대표와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친박 핵심들이다.

국정원 사건을 둘러싸고 실제 진행되는 상황이 이런 판이니 “국정원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겠다”는 대통령의 간접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국정조사 때 박 대통령과 여당한테 속은 경험이 생생하다. 실체 규명을 잘해보라고 대통령이 직접 말했는데도 여당 의원들은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민주당의 매관매직 공작사건이 본질”이라며 국정조사 기간 내내 엉뚱한 조사에 골몰했다. 말이 조사활동이었지 국정원 범죄행위에 대한 국회의 진상조사를 사실상 훼방놓았다. 국민이 정말로 기다려 주길 원하면 말보다 행동이 있어야 한다.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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