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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존경하는 고 선생님께 / 김흥숙

등록 2013-11-01 18:53수정 2013-11-01 18:55

김흥숙 시인
김흥숙 시인
선생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지난주 고용노동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법외노조’라고 통보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도 전교조 조합원이니 ‘법 밖의 사람’이 되셨겠네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세상에선 법이란 것도 거꾸로 갈 테니 ‘법 안의 사람’보다는 ‘법 밖의 사람’이 정의에 가깝게 사는 것이겠지요.

11월이면 더욱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11월3일, 바로 내일이 ‘학생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2006년부터는 명칭을 바꿔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부른다지만 아이도 저도 긴 새 이름보다 ‘학생의 날’이라는 옛 이름을 더 좋아합니다. 아이가 선생님의 제자가 된 중학시절 이맘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난 그냥 학생이고 학생은 그냥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역사의 일부라는 걸 몰랐어요.”

그날 아이는 선생님에게서 ‘학생의 날’이 무슨 날인지 배우고 왔던 겁니다. 1929년 광주에서 시작되어 전국 194개 학교 5만4000명의 학생들에게 퍼져갔던 항일운동을 알게 되었던 거지요. 전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불렸던 이 운동은 1919년의 3·1 독립운동, 1926년의 6·10 만세운동과 함께 일제강점기 3대 민족운동으로 일컬어지지만 그것을 아는 ‘요즘 학생’은 많지 않을 겁니다.

꼭 한달 전 10월3일은 개천절, 달력에 빨간 글씨로 표시된 국경일이지만 텔레비전 뉴스 속 학생들은 하나같이 그날이 무슨 날인지 몰랐습니다.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은 달력에 표시조차 되어 있지 않으니 학생들이 모른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겠지요. 언론과 어른들은 혀를 차며 ‘요즘 애들’을 비난했지만 저는 그 아이들의 불운을 동정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선생님 같은 선생님을 만났다면 영문도 모르고 비난을 받거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기억력이 나쁜 저이지만 그때 아이가 선생님께 듣고 와 들려주던 얘기는 기억합니다. 1929년 10월30일 오후, 기차로 통학하는 학생들을 태운 기차가 광주를 떠나 나주역에 도착했다지요. 기차에서부터 조선인 여학생들을 희롱하던 일본인 중학생들이 역에 내린 뒤에도 댕기를 잡아당기며 괴롭히자 조선 남학생들이 저지했고 그러다 두 나라 학생들 사이에 편싸움이 벌어졌다지요. 두 나라 학생들은 다음날 오후 기차에서 다시 충돌했고 일본인들과 일본인 편에 선 조선인들이 일방적으로 일본 학생들을 편들면서 항일운동에 불을 붙였다지요. 물론 그때 광주지역에 소리 없이 조직화되어 민족운동을 펼치던 성진회와 독서중앙회가 없었다면 11월3일의 투쟁은 지금처럼 큰 글씨로 역사에 새겨질 수 없었을 겁니다. 하필이면 일본의 4대 명절 중 하나인 메이지세쓰(명치절)에 대대적인 시위에 맞닥뜨린 일제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생각만 해도 고소합니다.

우리 정부는 1953년 10월 학생독립운동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11월3일을 ‘학생의 날’로 정해 기념하기 시작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0월 장기집권을 위한 ‘유신’을 실시한 뒤 학생들의 반정부운동이 확산되자 1973년 3월30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공포하여 ‘학생의 날’을 폐지했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이날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1984년엔 바로 그 규정이 개정되어 ‘학생의 날’이 다시 정부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학생의 날’이 폐지되든 이름이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바뀌든 한번 일어난 일은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 것처럼, 법 안에 계시든 법 밖으로 밀려나시든 선생님은 여전히 제 아이가 존경하는 유일한 스승입니다. 선생님, 제 아이의 스승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흥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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