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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호의 궁지] 소셜픽션 : 통영 2023

등록 2013-11-11 19:02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2023년 통영시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0군데 중 하나로 꼽혔다. 영국방송 <비비시>(BBC)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통영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도시들이 갖고 있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거부하고 자신의 색깔을 진지하게 인식하고 이를 발전시킨 사례’라며 추어올렸다. 특히 ‘크리에이티브 통영’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세 분야를 발전시킨 것이 비결로 꼽혔다.

첫째, 대표적 미항 통영은 신선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시락국’이며 충무김밥 등 서민 음식은 잘 보존하면서도 통영은 부가가치 높은 파인 다이닝(fine dining), 곧 고급 요리에도 신경을 썼다. ‘특색 없는’ 종합대학 대신 세계적인 요리전문학원을 유치하고, 통영 해산물을 활용하는 요리 개발을 지원했다. 또한 전문 기술을 익힌 셰프들이 고급 레스토랑을 열었고, 통영은 아시아 최고의 미식 도시로 성장했다.

둘째는 문학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박경리·유치환·김춘수 등의 소설이나 시집을 전시하는 것이 전부였다. 통영시는 음악을 ‘보고’ 경험하는 전시로 만들어낸 2013년 음반 레이블 이시엠(ECM) 전시에서 영감을 얻어 문학가, 전문 큐레이터 등 전문가들과 함께 젊은이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문학 전시 방법을 고민했다. 통영의 초중고교에서는 문학 교육을 강화했고 시애틀에서 시작한 ‘원 북, 원 시티’(one book, one city) 프로그램을 응용해 이곳 출신 작가와 작품을 함께 즐기는 행사를 열었다.

마지막은 공예다. 통영은 오랫동안 최고의 장인을 배출한 곳이다. 뛰어난 칠기와 나전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제품 개발에는 부족했던 장인들은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디자인과 갈고닦은 기술로 각 분야 협업을 통해 ‘베스트셀러’ 공예품을 만들어냈다.

다른 요소들도 힘을 더했다. 통영 출신 사업가들은 보기 흉한 모텔과 러브호텔을 디자인호텔, 부티크호텔로 재해석하고 투자했다. 시민들은 일년 내내 열리는 각종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고 시의 공무원들은 최고의 마케터로 외부 전문가들과 행사를 조율하고 홍보했다. 한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통영을 꼽은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지난주 통영을 다녀오며 기차 안에서 이런 상상을 했다. 최근 경제평론가 이원재씨를 통해 소셜픽션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공상과학소설(사이언스픽션)을 통해 상상한 것을 과학이 현실로 만들어왔듯,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먼저 상상을 통해 소셜픽션(social fiction)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는 주장했다.

통영은 놀랍게 축복받은 곳이었다. 언덕을 넘나들 때마다 아름다운 항구와 바다가 고개를 계속 내밀었다. 이 작은 도시에서 어떻게 음악·미술·문학·공예 등에서 걸출한 인재들이 나왔을까? 엄청난 잠재력과 함께 청마문학관처럼 낙후되어 보수와 새로운 기획이 필요한 각종 문화시설, 국적 불명의 요란한 모텔들, 비슷비슷한 음식점들을 보면서 ‘그저 그런 관광도시’가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교차했다.

소셜픽션은 문학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 작가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라는 점이다. 혼자 쓰는 소설이 문학작품으로 남는다면 여럿이 함께 쓰는 소셜픽션은 우리 미래로 펼쳐진다. 만약 통영시가 시민, 각 분야 전문가와 힘을 합쳐 소셜픽션을 만들고, 상상을 실현해 이 도시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면 다른 지방도시에도 커다란 자극과 응원이 될 것이다. 올해 처음 가본 통영, 내년에는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 멋지게 보여주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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