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경제평론가
지난 주말에 홍종호 서울대 교수로부터 흥미로운 강연을 들었다. 이른바 ‘스턴 보고서’로 알려진 <기후변화의 경제학>의 저자 니컬러스 스턴 전 세계은행 부총재와 역시 저명한 경제학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 사이의 논쟁에 대한 이야기였다.
논쟁의 내용은 과연 인류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얼마나 비용을 지출해야 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스턴은 전세계총생산(GWP)의 1%를 지출하지 않으면 몇년 안에 그 비용이 20%까지도 올라갈 수 있고, 경제공황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노드하우스는 그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 논쟁의 핵심에는 ‘내재적 할인율’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이 할인율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시간선호도이다. 1년 뒤 얼마를 받는다면 지금 100만원을 받는 것과 같을까? 물론 이자나 물가상승은 없이, 순수하게 시간만 흘렀을 때 말이다. 여기서 한 사회가 현재와 비교할 때 미래를 어느 정도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드러난다.
단순한 수식 같지만, 이 개념은 매우 현실적이다. 당신은 오늘 태어난 아기 한 명과 25년 뒤 태어날 아기 한 명 사이에 가치의 차이가 있다고 믿는가? 있다면 얼마나 있다고 믿는가? 3%의 내재적 할인율을 제시한 노드하우스에 따르면 오늘 태어난 한 명은 25년 뒤 태어난 두 명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미래의 문제는 현재의 문제보다 그만큼 덜 중요하다. 스턴에 따르면 두 사람 사이 차이는 거의 없다. 이 숫자에 입각해 펼친 정책은 다른 인간관과 다른 역사를 만들어낸다. 기후변화를 보는 시각도 판이하게 달라진다.
문득 떠올렸다. 지금 한국 사회의 내재적 할인율은 얼마일까? 우리는 미래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을까?
최근 한국 주요 신문을 뒤덮었던 국내 이슈를 보자. 국가정보원과 국방부의 대선 개입 사건,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사건, 전직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 논란… 시계의 초침은 과거를 향해 있는 듯하다. 과거에만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공론장의 풍경이다.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높은 할인율을 자랑하는 곳처럼 보인다. 미래라고는 없이 과거의 회고와 현재의 생존에만 매달린 사회 같다.
기초연금 이야기가 나올 때, 노인이 되었을 때의 삶을 떠올리며 설계해본 청년이 있는가.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30년 뒤 우리의 아들 손자가 다닐 학교의 모습이 어떨지 진지하게 떠올려본 일이 있는가. 10년 뒤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 우리 자손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줄 것인지, 이야기 나누어본 일이 있는가.
역설적으로 한국인은 자녀 교육에 엄청난 에너지와 비용을 쏟는다. 자녀의 불확실한 미래 소득을 위해 현재의 확실한 비용 지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는 과거 경제성장의 원동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쩌면 미래 세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나는 이 작은 근거로부터라도 여전히 희망을 찾고 싶다. 유별난 교육열이 자녀 세대에게 더 나은 사회를 물려주려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고 믿어본다. 미래는 불안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며 구성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희망 섞인 전망을 해본다. 이런 태도 변화는 고속성장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사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가려면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그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재구성해야 한다. 사회적 상상력이 필요해지는 시기다. 결국 아이 한 명의 가치는 어른 한 명의 가치와 같다는 철학을,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원재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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