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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삼천배 엄마, 기러기 아빠 / 법인

등록 2013-11-15 19:21수정 2013-11-15 22:25

법인 해남 일지암 암주
법인 해남 일지암 암주
“정말로 숨 막히는 세상이다.”

수능이 끝난 다음날, 엄마와 함께 고등학생 아들 둘을 미국에 4년째 유학 보낸 50대 초반의 아빠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일거리가 끊겨 학비를 보내지 못하는 경제적 고통과 함께 홀로 남아 있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미안하다. 너희들은 아버지처럼 살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의 인연을 접었다. 기사를 보며 생각했다. 미안하다니, 아비가 왜 미안해야 하지? 아비는 오로지 자녀를 위하여 외로움과 힘든 노동을 감내하며 ‘사랑’ 하나로 헌신했는데 말이다. 아버지처럼 살지 말라니, 이 또한 자녀에 대한 헌신과 사랑으로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인데 말이다. 이 기묘한 모순. 이 단순하면서 난해하기만 한 우리 시대의 화두.

내가 수능시험 당일 삼천배 하는 엄마의 모습과 세상을 떠난 기러기 아빠를 동시에 떠올린 것은 사랑에 대한 공감과 모순 때문이다. 자녀의 성공과 행복을 위하여 무한량의 사랑으로 헌신하는 부모, 자식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고 믿는 부모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 모습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랑하면 행복해야 하지 않는가. 그것도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모두가 행복해야 진정한 행복이고 사랑이지 않는가. 어느 한쪽만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이건 진정한 행복도 진정한 사랑도 아니다. 부모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꿈을 꾸지 못하고 미래의 성공을 위해 입시에 숨 막히는 자녀를 바라보아야 하고, 자녀는 자녀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는 아빠 엄마를 바라보아야 하는, 서로의 힘겨운 시선과 배치. 결론은 역시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우리 사회의 기러기 가족은 모두 오로지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의 성공과 행복을 위하여 희생한다고 한다. 행복하게 살려면 성공해야 하고 성공하려면 ‘돈’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결론은 부모가 돈을 생산해내지 못하면 자녀는 성공할 수 없고, 성공하지 못하면 자녀는 행복하지 못하고, 자녀가 성공하지 못하면 결국 부모의 인생은 실패한 일생이 되고 만다. 내가 논리적 비약이 지나친가. 아니다. 자본이 엮어내는 우리 시대의 고통과 불행의 윤회는 일생을 두고 이렇게 매일 진행된다. 이제 우리는 현실에서 이 불온한 윤회를 끊어내고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회복하는 해탈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다면 윤회를 벗어나 해탈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과 행복이라는 말에 정확한 수식어를 부여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법은 이런 것이고 행복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일이다. 그럼 시인의 입을 빌려 사랑과 행복을 서술해 보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로 ‘안 되는 일은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박노해,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중에서)

법인 해남 일지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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