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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거짓의 시대

등록 2013-11-28 19:22수정 2013-11-29 14:58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시민편집인의 눈]
‘야만의 시대’ 근본적 물음 던진 박창신 신부에 융단폭격
막힌 언로의 치유 위해 한겨레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지난 주말 오후, 종편 채널 화면은 뜨거웠다. 이른바 ‘시사평론가’들이 박창신 신부에게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었다.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그의 조국은 어디인가?”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사건이 언급된 그의 강론이 문제였다.

조선일보는 이미 1면 머리기사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터였다. 제목도 자극적이었다. ‘NLL서 한미훈련하면 쏴야죠, 그것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한 사제들의 시국미사를 다룬 뉴스였다.

새누리당도 때를 만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재빨리 ‘종북구현사제단’의 꼬리표를 들고나와 ‘대통령 사퇴 요구’ 뒤집기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들을 묵과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시국미사의 핵심 메시지, ‘박 대통령 퇴진 요구’에 대한 대꾸는 한마디도 없었다. 정홍원 총리도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적에 동조하는 행위’라며 가세했다. 검찰은 ‘수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박 신부가 사면초가 상황에 몰린 사태의 전말이 궁금했다. 내심 안타깝기도 했다. “도대체 왜, 굳이 민감한 문제를 건드려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이지?” “실언인가, 아니면 혹시 노신부님의 ‘노망기’ 탓?”

<한겨레>를 보아도 박 신부의 ‘북한 옹호’ 발언 진상을 가늠키 어려웠다. 결국 답은 인터넷에서 찾았다. 강론의 전문과 인터넷방송 <팩트>가 시국미사 전 과정을 담아 올려놓은 동영상이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신부는 연평도를 포격한 북한의 만행을 옹호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야만의 시대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따름이었다. “전쟁이냐, 평화냐. 남북의 갈등이냐, 화해·협력이냐. 이 시대에 ‘종북몰이’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신부는 달을 가리키는데 ‘당정청’과 ‘조중동’은 신부님 손가락에 묻은 티끌을 놓고 ‘콩이니 팥이니’ 입방아를 찧고 있다니. 고귀한 생명이 희생된 사건을 비유에 끌어들인 것은 정서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그러나 강론은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남북이 강퍅하게 대립하는 구조는 깨야 한다는 취지의 것이었다. 더구나 박 신부를 몰아붙이고 있는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엔엘엘(NLL) 논란’의 부질없음을 잘 알고 있다.

<조선일보>는 일찍이 엔엘엘의 성격과 국제법상 지위를 명료하게 전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1996년 7월18일치 ‘뉴스 초점’에서 말했다. “바다의 경우는 남-북간에 의견이 엇갈려 지금까지 정해진 경계선이 없다. 무력충돌을 우려해 양측이 ‘힘의 균형’을 통해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NLL 침범이 정전협정 위반사항은 아니다’라는 (국방장관의) 답변은 맞는 것이다.”

<동아일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9년 6월11일치 ‘북방한계선 남쪽 해상, 우리 영해인가 아닌가?’ 제하의 기사에서 못박았다. “국제법상 영해란 어디까지나 특정 주권 국가가 3마일 또는 12마일 범위에 설정하고 만약 주변 국가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으면 서로 협의해서 인정하는 개념이란 점을 감안하면, NLL 이남은 영해는 아니다.”

‘작은 산술’이 난무하는 세상의 아이러니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정권 출범 1년 황금기를 허송하는 데 앞장선 언론의 해설기사였다니. 얼마나 명쾌한 설명인가. 박근혜 시대 불행의 단초가 ‘거짓과 위선의 언어 체계’에 있음을 확인한다.

‘정쟁 대신 민생을.’ 박근혜 어록 첫 장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는 정쟁에 기름을 붓고 있다.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동문서답’으로. ‘국가기관의 선거부정은 나와 무관하다. 국정원의 셀프개혁을 믿는다. (시국미사 관련) 국론 분열 행위 묵과하지 않겠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해 가져오세요.’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고뇌와 결단의 흔적이 눈에 띄지 않는다.

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래로 잘도 흐른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하고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며 내놓은 정부 설명은 아무래도 궁색하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까지 들먹일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엄정한 수사를 거쳐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데, 수사에 전념하는 검사를 내치며 징계까지 하는 것은 또 뭔가.

이 야만의 시대 웃음거리는 민주당의 줏대 없는 행보다. 손해를 보더라도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없어 보인다. 민주당은 ‘당정청’과 ‘조중동’이 합세해 신부를 맹공하자, ‘신부의 연평도·엔엘엘 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꽁무니를 뺐다. 민주당의 비겁성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부의 폭력적 공세에서도 엿보였다.

민주당은 ‘똥 싼 놈의 큰소리’ 앞에서도 엉거주춤한 모습이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선거부정 사례가 잇달아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리면서도 간간이 공세를 취하곤 했다. “지난 대선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것이냐.” 민주당은 그때마다 아니라고 손사래 치기에만 바빴다. 한때 기세 좋게 종편 출연을 거부하던 민주당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진정성 결여된 프로그램 만들기에 참여하고 나섰다. 그 모습은 ‘영혼 없는’ 민주당을 상징한다.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거짓의 시대, ‘물구나무선 말’의 압권은 ‘언로가 보장돼 있고 민주주의 절차가 지켜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 사퇴를 요구한 신부들을 비판하는 데 쓰인 논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죽했으면 신부들이 나섰겠는가. 박 정권의 오만과 위선이 도를 넘은 것이 출발점임은 물론이다. 정작 신부들을 움직이게 한 힘은 따로 있다. 길 잃은 언론, ‘영혼 없는’ 민주당에 대한 불신이 그것이다.

그동안 깜박 잊어버린 일이 있다. 해직 언론인 문제다. 엠비(MB) 시절, 16명의 언론인이 쫓겨났다. 엠비시(MBC), 와이티엔(YTN) 등에서 정권의 언론장악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인사들이다. 이명박 시절 전두환 정권 이후 언론인 탄압이 가장 강력했다. 거짓의 시대를 치유하기 위해, 언론의 정상화를 위해 이들의 원상회복은 절실한 과제다.

<한겨레>조차 해직언론인 문제에 무관심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답이 궁금한가? “이명박 시대의 문제는 나와 무관하다. 언론사 스스로 판단해 해결하세요.”

<한겨레>도 그때를 기다리고 있는가요.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 이 칼럼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이 지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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