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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김치

등록 2013-12-01 19:14

새벽 방송을 마친 아나운서 몇이 식당에 둘러앉았다. 날마다 먹는 아침밥이지만 그날 식탁은 여느 날과 달랐다. 가지런히 펼쳐놓은 식판들 가운데 오도카니 놓여 있는 케이크 하나. 영문 모른 채 자리 잡은 동료가 머리 갸웃하자 새내기 아나운서가 빙긋 웃는다. 꼭두새벽 출근길에 폭죽과 초까지 챙겨 온 자신을 뿌듯해하는 듯했다. 옆에 있던 후배가 촛불 켜는 사이 앞자리에 있던 이는 폭죽을 터뜨렸다. 휑뎅그렁하던 구내식당이 해사한 웃음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뜻하지 않게 받은 과분한 생일상이었다. ‘생일상’의 백미는 적당히 익어 아삭한 김치였다. ‘리어카 빌려 손수 싣고 온 김치 50포기로 김장한 날 밤, 쌈김치 배불리 먹고 난 뒤 해산했다’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라 더 맛있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거기에, 김장철 김치라 더 맛있게 느껴졌을 것이다.

김치의 갈래는 여럿이고 종류는 정확히 몇 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많다. 동치미·나박김치 같은 물김치가 있는가 하면 ‘봄에 새로 난 배추나 무 따위로 담근’ 햇김치, ‘봄철까지 먹을 수 있도록 젓갈을 넣지 아니하고 담근’ 늦김치처럼 때의 뜻을 담아 부르는 것이 있다. 배추·무·오이·파·부추·고들빼기는 기본이고 우거지·돌나물·두릅·고수에 이르기까지 김치 담그는 재료 또한 참으로 다양하다. 그릇도 다르다. 간장은 종지에 담듯이 김치는 보시기에 담는다. 오이 허리를 서너 갈래로 갈라 온갖 재료로 양념한 소를 박아 만들면 오이소박이, 무 따위를 나박나박 썰어 담그면 나박김치, 깍둑썰어 만들면 깍두기다. 덤불김치는 알뜰 살림의 본보기다. 무의 잎과 줄기, 또는 배추의 지스러기(골라내거나 잘라 내고 남은 나머지)로 담그기 때문이다. ‘알타리(무)김치’는 총각(무)김치의 잘못이고, ‘열무냉면’에서 보듯이 국물김치로 많이 담그는 열무는 ‘어린 무’다. 남자는 있는데 여자가 없는 김치도 있다. 무나 배추 한 가지로 담근 김치를 홀아비김치라 이르는데 ‘과부김치’는 없기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김장철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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