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파업 14일째인 22일 오전, 경찰이 김명환 위원장 등 철도노조 집행부의 체포영장을 강제집행하겠다며 민주노총이 세들어 있는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 1층 로비에서 출입문을 뜯어내고 최루액을 발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hani.co.kr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37
‘설국열차’ 폭주가 현실에서 ‘박근혜 열차’ 폭주로 나타나
민주노총 침탈…‘바닥 계급은 어떤 처분도 가능’ 웅변한 셈
‘설국열차’ 폭주가 현실에서 ‘박근혜 열차’ 폭주로 나타나
민주노총 침탈…‘바닥 계급은 어떤 처분도 가능’ 웅변한 셈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시민들의 물음에 답한다는 것이 고작 광란의 해머질이었군요. 평안을 바라는 시민들의 소망엔 최루액을 뿌리고, 일하는 이들의 자존심엔 곤봉과 물대포를 날렸습니다. 이제 누가 폭주하는 건지 명확해졌습니다. 민주노총 본부는 대한민국의 일하는 이들의 상징적 공간입니다. 국민들에겐 국회와 같은 곳이죠. 정치적 성향은 달라도, 국회가 군홧발에 짓밟히는 걸 원하는 국민이 없듯이, 민주노총 본부가 경찰 진압봉에 파괴당하는 걸 원하는 노동자는 없습니다.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파업의 기치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의 파업권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아가 효율성을 앞세워 철도의 공공성과 안정성을 희생하고, 무능 경영진의 낙하산 임용 등 가장 큰 부실 요인은 멋대로 저지르면서 경영 적자의 책임을 온전히 노동자에게 떠넘기려는 것에 대해서도, 이 정권을 지지하는 이들 중에서도 회의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다짜고짜 파업 참가자들을 직위해제했습니다. 노조 집행부를 형사고발하고,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 노동자를 섬멸의 대상으로 간주해 작전을 벌였습니다. 노동자를 그저 기계에 딸린 소모품 정도로 간주하거나, 저항하는 노동자는 아예 국사범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생각을 숨김 없이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압수수색영장이 기각당했는데도, 체포영장만 갖고 일하는 이들의 영혼이 스며있는 민주노총 본부를 침탈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파업에 들어가자마자 직위해제한 4356명은 어느 누구 하나 우리 국민 아닌 사람이 없고, 한 사람의 지아비 지어미이고, 부모의 자식이고, 자식의 부모이며, 우리 모두의 형제자매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이들을, 그저 돈이나 받고 몸이나 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최소한의 노동 인권을 무시하고, 생계를 파탄내려 했습니다. 그분들은 다름 아닌 우리 아이들 혹은 젊은이들의 머잖은 장래 모습입니다.
<설국열차>의 마지막 칸에서 바퀴벌레 파이를 먹고 노예처럼 살아가는 ‘계급’이 생각납니다. 지금 박근혜호라는 이름의 기관차는 거기에 승차한 대한민국 국민 중 대부분인 일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그런 노예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런 지위를 거부하는 노동자, 곧 저 바닥 계급은 언제라도 추방이나 분쇄 등 어떤 처분도 당할 수 있다! 철도노조 집행부도 없는 민주노총에 대한 침탈을 통해 웅변한 셈입니다. 영화 속 <설국열차>의 폭주가 현실 속 <박근혜 열차>의 폭주로 나타날 줄이야….
이번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누리꾼들은 1979년 8월11일, ‘YH무역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 강제진압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형식적으로 보자면, 제1야당인 신민당 중앙당사를 경찰 병력 2000여명이 유린한 것이니, 민주노총 침탈과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누리꾼들이 이런 형식적인 유사성만 생각해 YH사건을 떠올린 건 아닙니다. 이들은 오히려 사건 이후의 전개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을 겁니다. YH사건 뒤 유신정권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에 대한 직무집행 정지에 이어 김영삼 의원 제명을 강행합니다. 그리고 ‘부마 항쟁’이 터지고, 박정희는 부하에게 피살당하고, 유신체제는 몰락합니다.
관심을 보인다고 ‘기대’하는 건 아닙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동자들 대부분은 이 정권이 잘해주길 바랐습니다. 아무러면 이명박 정권보다야 못하겠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 뒤 많은 이들이 그런 바람을 접고, 마음속에 절망과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오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비참한 몰락을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그건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이 나라, 이 국민 모두의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웬걸, 북한 정권이 우리에게 “예고없이 타격하겠다”고 협박하고 불과 사흘 만에, 이 정부는 다름 아닌 일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타격했습니다. 누가 누구의 적인가, 누가 누구의 편인가요.
YH사건보다 먼저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6년 전 한겨울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용산 참사’였습니다. 무지하게 추웠던 새벽이었습니다. 철거민들이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농성 채비에 들어가고 불과 25시간 뒤 경찰 특공대는 옥탑을 가차 없이 유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공대원 1명을 포함한 6명이 사망했고, 23명이 중경상을 당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이 사건을 통해 안으로는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은 잠재적 도시 테러리스트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는 도저히 생각도 못할 야만성을 과시했습니다. 내용의 야만성과 수단의 야비성이 이번 사건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오전 “적당히 타협해선 미래를 기약 못한다”고 했다지요. 자랑스런 불통의 박근혜호 기관차가 폭주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용산참사인가요, YH사건 ‘이후’인가요, 아니면 그 모든 사태의 종점인 자폭인가요.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곽병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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