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방에 들어오고 나간 것이 무엇인지 가늠해 본다. 책은 들여온 것과 내놓은 양이 비슷하다. 그나마 ‘책장 다이어트’ 덕분이다. 작품 대신 벽 여기저기에 붙여 놓은 그림엽서는 늘었고 향초는 켜 댄 만큼 높이가 줄었다. 음반은 늘었다. 헌책방에서 골라 온 엘피(LP)판 덕분이다. 레코드판이 숨 쉴 턴테이블도 하나 더 장만했다. 스피커 달려 있고, 건전지를 넣으면 전원 없이도 쓸 수 있는 물건으로 야외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휴대용이다. 모임에 들고 나가면 인기 폭발이다. 학창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야전’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야전’은 야외전축을 줄인 말이다. 50대 이후에게 ‘야전’, 40대에게 ‘야자’(야간자율학습)는 익숙한 표현이다.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는 ‘노사모’와 같은 숱한 작명을 낳았고, ‘별밤’(별이 빛나는 밤에)은 프로그램 애칭의 대표 격이 되었다. 줄임말은 “‘전대협’과 ‘국조권’ 등 줄임말 남발은 삼가야”(1980년 ㄱ신문)에서 보듯 예부터 시빗거리의 하나였지만 이런 현상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줄임말은 반드시 바루어야 할 문제일까.
어른들은 ‘문상’(문화상품권), ‘생파’(생일파티), ‘버카충’(버스카드 충전)을 낯설어하고, 아이들은 ‘농해수위’(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아태’(아시아·태평양), ‘노조’(노동조합)의 원뜻을 찾기 어려워한다. 언어학자들은 ‘말 줄임 현상은 언어 생성의 한 방법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의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줄임말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세대간·계층간 이해가 모자라는 데 있을 것이다. 제 뜻 알기 어려운 생소한 줄임말은 풀어주고 아이들의 줄임말은 알려고 먼저 나서면 해결될 일이다. 상대가 어떤 표현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이는 게 소통의 시작이다. 아니면 불통이 된다. 지난 1년간 뉴스에 등장한 ‘불통’은 2만1000여건, 그 1년 전 7000여건의 거의 3배에 이른다.(네이버) 한 해가 간다. 가는 해와 함께 ‘불통’도 사그라지기를 바란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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