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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청마

등록 2014-01-05 19:05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ㅎ던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帽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의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새해 이 자리를 시로 열었다. “그때 그 시가 뭐였지?” 미국에서 사업하는 오랜 벗이 건넨 한마디 때문이다. 학창 시절 펜으로 휘갈겨 써준, 가슴 뛰게 했던 시 한 수를 이제 와 새삼 이 시절에 떠올린 까닭은 캐묻지 않았다. 그저, 벗 앞에서 다시 읊게 된 것이 고마웠을 뿐. 시에 담긴 뜻 따위를 분석하는 짓은 주제넘은 일이니 시어 몇 개만 짚어보자. ‘요조하다’는 ‘여자의 행동이 얌전하고 정숙하다’, ‘기술사’는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부리는 사람’, ‘한천’은 ‘겨울의 차가운 하늘’을 뜻한다. ‘에이다’는 ‘에다’(칼 따위로 도려내듯 베다)의 피동사, ‘옥’은 곧 ‘감옥’, ‘연자’는 ‘연자매(소나 말이 돌리는 큰 맷돌) 위에 있는 굴대 모양의 맷돌’을 가리키고 ‘치레하다’는 ‘실속 이상으로 꾸미어 드러내다’이다.(표준국어대사전) 시가 발표된 때는 ‘3·15 부정선거’로 시끄럽던 1960년, 제목은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작가는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회자되는 ‘깃발’을 쓴 유치환, 그의 호는 청마(靑馬)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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