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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거짓된 말을 버리십시오…

등록 2014-01-06 15:24수정 2014-02-28 17:29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취임 후 첫 신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4.01.06 / 청와대 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취임 후 첫 신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4.01.06 / 청와대 사진기자단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39

절망스러웠습니다…일말의 반성도 없었던 첫 기자회견
말을 왜곡하지 마십시오, 부디 상식으로 돌아오십시오
이명박 전 대통령이 5년 내내 복장을 뒤집어놓는 게 있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4대강을 죽여놓고도 4대강을 살렸다고 우기고, 서민들의 주머니 털어 부자에게 얹어주고도 서민 혹은 민생 살리기라고 우겼습니다. 사저 구입에 국가 예산까지 쓰려다 들통 나고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운운했죠.

4대강 사업은 그 거짓말로 말미암아 우리 국민의 도덕적 감정의 작동에 심각한 장애를 입혔습니다. 하도 살리기라고 되풀이하다 보니, 국민들이 거짓말과 사실을 혼동하다가 나중엔 거짓과 진실을 판별하려는 노력을 아예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대신 모든 논란을 친정부냐 반정부냐, 여당이냐 야당이냐, 보수냐 진보냐 따위의 ‘진영 논리’로 치부하게 만들었죠. 도덕 감정의 기본은 진실 지향성인데, 진실과 거짓, 옳음과 그름의 판단력을 마비시킨 것입니다. 그러니 비비케이 사건 등 국가 원수직에서 쫓겨나야 할 별의별 거짓말을 해도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모든 정부 혹은 모든 권력은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만, 국민의 도덕 감정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거짓말을 일상화시킨 건 그분 말고는 없을 것입니다.

누가 집권해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특히 가슴을 가리고도 남을 정직과 신뢰라는 배지를 달고 다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으니, 기대는 컸습니다. 그러나 불과 1년 뒤의 성적표는 어떨까요. 박근혜 대통령으로선 모멸적일 수밖에 없는 ‘이명박 6년차’라는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요 선거 공약들을 파기하거나 뒤집은 것을 두고 전임 거짓말 정권의 연장을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국민 대통합, 국민행복시대, 경제 민주화, 복지 확충, 기초연금 등. 그러나 공약 파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고도 공약을 파기하거나 수정한 게 없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을 파괴해도 되는 건지….

그렇다면 국정원의 정치 공작도 정상화고,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도 정상화이며, 검찰총장 사찰과 공갈 협박에 의한 퇴출도 정상화고, (대화록과 엔엘엘) 모략도 정상화입니다. 불법이 정상이고 준법은 비정상입니다. 낙하산 인사도 정상화고, 편중 인사도 정상화고, 종북 혹은 용공 몰이도 정상화고 이를 통한 국민 분열도 정상화입니다. 역사 왜곡도 정상화고, 영리화로 호도한 철도·의료의 민영화도 정상화입니다. 40년 전으로 되돌아간 정권의 퇴행도 선진화고 정상화입니다. 국무총리실에선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상화 10대 분야, 48개 핵심 과제 및 32개 단기 과제 등 모두 80개를 선정했습니다. 얼마나 더 말을 왜곡하고, 우리 사회의 신뢰를 파괴하고, 이성을 마비시키고, 도덕 감정을 붕괴시키려 하는 건지….

새해 덕담은커녕 이렇게까지 목청을 돋우는 건 오늘 기자회견 내용 때문입니다. 그렇게 피하던 기자회견을 처음으로 하게 됐으니, 일말의 반성 혹은 유감 표명이라도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정상을 비정상으로 뒤집고,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우기는 게 뼈대였습니다. 회견에서 소통의 전제 조건으로 이런 걸 꼽았습니다. “법을 존중하고, 법을 지키고, 법이 공정하게 적용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래야 우리 사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손톱만큼이라도 염치가 있다면 그런 말은 하지 못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을 혼란 속에 빠뜨린 국정원 등 국가기관 대선 개입 문제만 생각해봅시다. 대통령은 법을 존중하고, 법을 지켰습니까. 그리고 법을 공정하게 집행했습니까? 그런 노력들을 무력화시키고, 그렇게 노력한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내쫓은 게 누구였습니까. 대통령이 법만 존중하고 지키기만 했다면, 지금 대통령 사퇴 요구가 저렇게 터져나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늘은 천주교 정의구현 수원교구 사제단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유신체제의 직접적 피해자로서 한때 박 대통령을 지원했던 인명진 목사는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이 정상적이어야지, 정부는 비정상적으로 하면서 다른 것을 정상화하겠다고 하면 국민들이 신뢰를 하겠습니까.”

고려 때부터 임금은 그 곁에 정언(正言)이란 신하를 두었습니다. 왕의 말을 바로잡는 직책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간관, 언관, 대관으로 이어져왔죠. 임금의 말이 바르지 않고,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면, 사회도 국가가 흔들린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성경엔 바벨탑 신화가 있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깨기 위해 신이 동원한 채찍이 말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바벨탑은 곧 붕괴합니다.

회견에서 역사 교과서 이야기도 언급했습니다. 역사를 대통령의 입맛에 맞춰 비틀고 왜곡해 쓴 교학사 교과서가 교사, 학생, 학부모들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퇴출된 것이 아쉬웠나 봅니다. 하긴 이 정부가 출범 초부터 관변 언론과 학자들을 총동원해 지원했는데도 그런 결과가 나왔으니 억하심정도 생길 법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념 논란 운운할 일이 아닙니다. 그건 사관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의 문제였습니다. 학교 재단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한 것을 막은 동원고등학교 학생들은 대자보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곽병찬 대기자
곽병찬 대기자
“동원고 교복이 이제 부끄럽다. 식민지 침략과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와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교학사 교과서를 학교 재단이 채택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혹은 이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다.”

상식으로 돌아오십시오. 말을 왜곡하지 마십시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게 하십시오. 대통령이 아이들만도 못하다는 지적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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