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세 모녀의 자살’은 대한민국의 일상적 비극이자 복지의 민낯이다. 그 내용도, 반응도 그렇다. 숱한 목소리가 분출했다. 야당의 한 의원은 “아주 작은 도움이 있었어도…”라며 안타까워했고, 다른 의원은 “공공의료와 복지 전달 체계의 취약성”을 질타했다. 복지를 주창하고 당선된 뒤 경제 활성화를 국정 목표로 내세운 대통령은 늘 그랬듯 말을 아꼈고, 여당의 ‘개념 있는’ 한 의원은 “죄송하다”고 운을 뗐다. “보편적 복지를 파기한 정권의 타살”이라고 격분하는 지식인들, 트위터 등을 통해 조의를 표하는 누리꾼들의 반응 또한 줄을 이었다. 제각기 진심을 담아 애도의 뜻을 나타낸 것일 게다. 하지만 공감도 긴장감도 주지 못하는 건 왜일까? 오히려 불편한 기시감을 느끼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누군가의 말대로 이 사건 또한 “내일이면 모두 까맣게 잊을 것”이며 “앞으로도 이런 비통한 사건이 끊이질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랬다. 2003년, 그해 여름이었다. 인천의 한 고층아파트에서 송아무개씨가 자살을 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14층에서 아이 둘을 먼저 던지고, 다른 아이 하나를 안고 허공으로 몸을 내던졌다. 남편의 공장 부도와 실직, 카드빚과 은행 대출 3천만원, 식당에서 일했지만 그마저도 막내가 태어나면서 계속할 수가 없었던 상황. 끝내 여인은 서른넷의 생애를 ‘자살자’이자 ‘살인자’로 마감했다. 충격과 파장은 컸다. 언론은 앞다투어 떠들어댔고, 인터넷에선 조의가 넘쳤다. 전문가들은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을 질타했고, 정치인들은 복지 사각지대 해소책을 논했다. 지식인들은 ‘사회적 타살’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우었다. 왁자지껄 소동이 며칠간 이어졌지만 세상은 이내 고요했고 다시 평안했다. 석달 뒤인 그해 10월, 이번에는 한 아버지가 희귀병으로 6년째 전신마비가 된 딸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살인자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소란이 일었고, 또다시 잠잠했다.
세 모녀 비극이 알려진 요 며칠간 청와대는 여전히 말이 없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긴급지원제도 등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설명 자료를 내놓았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통반장 등을 통해 위기 가정을 발굴하겠다”면서도 “본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기보다는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생긴 측면도 있다”고 말했고, 송파구청 쪽은 “구청에 상담 기록이 없어 처지를 알 수 없었고, 주변에서 어려운 가구를 발굴해 추천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도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정당들은 “복지 확대가 대세”, “하루빨리 생계 지원책을”, “대통령이 경제성장만을 외쳤다”는 성명서를 쏟아냈지만, 말은 정처를 찾지 못했다.
민주화로 정권이 바뀌고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돼 복지의 새 역사를 썼다. 복지국가란 깃발이 휘날리더니, 반복지 세력이라고 의심받던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맞춤형 복지와 복지국가를 구호로 내세워 당선된 상황도 전개됐다. 그럼에도 비극은 줄기는커녕 일상이 됐다. 왜, 무엇 때문일까? 세 모녀와 송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주범은 무엇이고, 아버지에게 그런 선택을 강요한 공범은 또 누구인가? 실직한 뒤 11살 아들을 다리 밑으로 내던지고 자살한 가장, 자신이 죽으면 장애 아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단 생각에 목을 맨 50대의 또다른 아버지, 영양실조로 숨진 30대 청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만으로 살 수 없다며 자살한 60대 부부…. 이들이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하도록 할 해법은 없었나? 없나? 그 답을 찾아 실행하는 데 각자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비극은 우리, 아니 내 곁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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