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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새정치로 가는 길 / 백기철

등록 2014-03-13 18:51

백기철 논설위원
백기철 논설위원
안철수 의원이 지난해 최장집 교수와 손잡고 제3정당 한다고 할 때 작지만 단단한 새정치의 성채 하나 만들어줬으면 했다. 진보적 자유주의를 내걸고 노동에 기초한 정당을 만든다는 구상도 야심 차 보였다. 다만, 두 사람 모두 현실정치에 어둡고 안 의원 성향이 이런 노선과 맞지 않아 보이는 게 걸렸다.

사실 안철수와 최장집이 결별하는 순간 안철수의 제3정당 실험은 끝났는지 모른다. 두 거대 정당의 왼편엔 독자정당의 공간이 제법 있지만,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엔 제3지대가 별로 없다. 안철수는 말로는 독자정당을 내세웠지만 실은 민주당을 접수하는 데 골몰했다.

올해 초 신당을 본격화하면서 안철수는 통합, 포용, 합의, 공동체 등의 단어를 섞어가며 중도 색채를 강화했다.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디제이 시절의 용어까지 등장했다. 민주적 시장경제는 그 포장과 달리 국제자본에 떠밀려 우리 기업과 노동자, 서민을 사지로 몰아넣은 신자유주의 길을 닦았다.

안철수가 왼쪽, 오른쪽을 왔다갔다하는 사이 새정치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안철수만 남았다. 생각해보면 안철수는 국민의 열망이 불러낸 도구에 불과하다. 새정치에 대한 국민의 바람이 있고 그다음에 안철수가 있다.

국민이 안철수를 통해 구현하려 했던 새정치는 무엇일까. 첫째, 지역구도에 근거한 양당 독식 구조를 깨뜨리는 것이다. 지금의 소모적인 적대적 공생 구조로는 나라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공론이 들어설 여지를 주지 않는다. 둘째, 나라 발전을 이끌기는커녕 발목을 잡는 후진적 정치행태를 청산해야 한다. 반대세력을 종북으로 모는 이념몰이, 폭로와 막말로 얼룩진 천박한 정치언어, 지연·학연으로 뭉쳐 끼리끼리 해먹는 기득권 패거리 문화 등 전근대적 정치문화를 일소해야 한다.

셋째, 분열과 대립의 정치에서 타협과 합의의 정치로 전환해야 한다. 사분오열되어 싸우는 분열의 정치로는 민생도, 나라의 백년대계도 기약할 수 없다. 넷째,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생하며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남한 내에서 최소한의 합의를 토대로 일관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개혁, 정당 개혁, 선거 개혁, 나아가 권력구조의 개편도 모색해야 한다. 법과 제도의 문제 못지않게 사람을 바꾸고 정치풍토를 개선하는 일도 시급하다. 이는 몇몇 사람에 의해 단시일에 될 일은 아니다.

민주화가 한판의 승부가 아니듯 새정치도 한판의 승부는 아니다. 새정치가 누구의 전유물일 수도 없다. 새정치란 게 어느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을 제압함으로써 이뤄질 일도 아니다. 두 거대 정당, 진보·군소 정당들, 시민단체, 나아가 국민까지 모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힘을 합쳐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물론 정치적 변화에는 주도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간 안철수를 통해 기존 정치권에 유형무형의 압력이 가해짐으로써 일정 부분 변화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안철수가 민주당과 합쳐서도 실질적으로 새정치의 화두를 계속 가지고 갈지, 아니면 자신의 대권 레이스에 새정치를 포장으로 갖다 붙일지 두고 볼 일이다.

통합신당의 출현으로 진보정당들의 공간도 더 넓어졌다. 진보정당이야말로 애초부터 새정치의 한 축이었다. 본래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당 내 개혁 그룹이나 새누리당의 분화를 통한 새정치 추진 동력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각 정치주체들이 제각각 새정치를 놓고 경쟁하고 유권자는 내용을 보고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내용 없는 구호만큼 공허한 것은 없다. 구호나 이벤트가 아니라 정치문화를 개선하고 민생을 책임질 수 있는 새정치의 알맹이를 보여 달라.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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