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청와대에서 열린 회의가 여러 방송에 생중계되었다. 규제개혁 장관 회의로 진행하려던 것에 민간 참여를 크게 늘려 ‘토론회’(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말하며 논의하는 모임)와 ‘공청회’(국회나 행정기관에서 일의 관련자에게 의견을 들어보는 공개적인 모임)까지 겸하는 자리로 확대 개최한 자리였다. ‘끝장토론’을 해서라도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를 보여주려는 ‘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는 7시간 가까이 이어진, 이름만큼이나 긴 마라톤회의였다.
마라톤은 ‘장거리 종목’의 특성에 기대어 ‘마라톤협상(회의)’처럼 ‘쉬지 않고 장시간에 걸쳐 벌이는 일’을 비유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 ‘마라톤금융’(여러 은행을 거치며 장기간 차입금으로써 자금을 굴리는 부정 금융)은 화석처럼 표제어로 남아 있다. ‘마라톤’ 표기가 자리잡은 것은 4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마라손’(マラソン)은 광복 후에도 ‘마라돈’(ㄱ신문, 1949년), ‘마라톤’(ㄷ일보, 1950년)과 함께 여전히 등장하지만 1960년대 널리 쓰이던 ‘마라돈’은 ‘마라손’과 함께 1970년대 중반에 자취를 감춘다. 정부가 ‘마라톤’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어원이 그리스(Gr)에 있다고 본 것이다.(교과서 편수자료, 1977년)
중계방송을 위해 공부하다가 알게 된 게 있다. ‘마라톤 평원을 쉼 없이 달려 승전보를 전하고 숨을 거둔 그리스 병사 이야기’에서 경주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후대의 누군가가 그럴듯하게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 페르시아 전쟁을 기록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관련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쟁에서 진 페르시아의 후손들은 마라톤 경주를 하지 않는다. 장거리 육상 선수는 있지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 마라톤 종목에는 출전하지 않는다. 이란이 연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마라톤이 제외되었음은 물론이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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