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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늘지오’는 어디 갔나? / 박순빈

등록 2014-04-10 19:06수정 2014-04-10 20:42

박순빈 논설위원
박순빈 논설위원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의 공약은 매력적이었다. 박 후보는 대선 한달 전인 2012년 11월18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완성된 공약을 처음 선보였다. 그는 청바지 입고 청년들과 함께 말춤 추며 등장해 ‘국민통합’, ‘정치쇄신’,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3대 국정지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또 이를 위한 실천과제 10가지를 제시했다. 이 가운데 ‘늘지오’ 공약이 돋보였다. 늘지오란, 새 일자리를 ‘늘’리고, 기존 일자리는 ‘지’키고, 일자리의 질은 더 ‘올(오)’린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이 지났다. 그간 경제민주화와 복지 관련 공약은 일찌감치 흐지부지하는 쪽으로 틀었다. 늘지오 공약은 여전히 유효한지 궁금하다. 이상하게도 박 대통령은 취임 뒤 지금까지 늘지오를 한번도 거론한 적이 없다. 정부 관련부처 관료들 입에선 쑥 들어간 지 오래다.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도 늘지오 공약을 찾을 수 없다.

늘지오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 바로 통계청이 9일 발표한 ‘3월 고용동향’ 자료다. 박근혜 정부 취임 1년 동안의 고용 성적표인 이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1~3월) 평균으로 취업자수(일자리)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72만9000명이나 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고용률도 58.8%로 1.1%포인트 높아졌다. 언뜻 보기에는 ‘고용 대박’이다. 그러나 톺아보면 ‘빛 좋은 개살구’란 느낌이 든다.

우선 취업자 증감 추이를 업종별로 구분하면, 도소매·음식숙박업·개인사업·공공서비스·사회복지서비스 등에서 늘어난 일자리가 전체의 80% 가까이를 차지한다. 연령별로는 50살 이상 취업자가 54만1000명이 늘어 74.2%나 된다. 여성의 경우 40~50대의 취업 증가가 두드러진다. 결국 지난 1년 동안 고용의 양적 확대와 질적 악화가 동시에 진행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미 경쟁이 치열해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에서, 그것도 중장년층과 경력단절 여성 중심으로 고용 확대가 이뤄진 때문이다.

중장년층과 달리 청년층 고용 사정은 양적으로도 바닥이다. 올해 1분기 20~29살의 청년 고용률은 56.7%로 통계청이 관련 통계기준을 바꾼 199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1분기 8.3%이던 청년 실업률은 올해 1분기 9.7%로 치솟았다. 봄은 왔지만 청년층 취업전선은 외환위기 때만큼의 빙하기에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는데도 청년층에 줄 반듯한 일자리가 늘지 않는 것은 정부의 고용정책이 양적 확대에만 치우친 결과다.

경기와 고용 간 상관관계가 떨어진 것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포인트 높아질 경우 취업자수 증가 폭을 계산하면, 참여정부(2003~2007년)에선 연평균 5만9000명이었으나 이명박 정부(2008~2012년) 때는 8만8000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도시근로자 평균 실질임금이나 가계소득 증가율은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성장을 하더라도 일자리의 질은 더 떨어지는 바람에 일해서 돈 버는 계층에게 돌아가는 몫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고용 없는 성장’이 아니라 ‘성장 없는 고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박근혜 정부에선 ‘성장 없는 고용’ 현상이 더 심화했다. 지난해 3% 경제성장률에 취업자수는 38만6000명 늘었다. 성장률 1%포인트당 12만9000명으로, 이명박 정부 때보다 증가 폭이 훨씬 커졌다. 양적 확대에만 치중한 이명박 정부의 고용정책을 박근혜 정부가 전환하기는커녕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는 증거다. 늘지오는 어디로 갔나?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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