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를 받아 보며 아쉬운 때가 많았는데, 이번엔 참기 힘들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후배가 찍어 올린 학보를 보았다. 기사 제목 ‘해드라인의 맞춤법부터’가 눈에 들어왔다. ‘해드라인’이 헤드라인으로 버젓이 찍혀 나오는 그 학보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정치에 대한 대학생의 인식을 머리기사에 올린 학보는 학생회·학교 관련 소식과 문화가 이슈, 지상 철학 강좌 따위를 다루고 있었다. 다른 기사는 크게 흠잡을 데 없었고 학생기자와 교수의 칼럼은 제 나름의 시각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괜찮게 만든 학보’라는 생각을 하며 신문을 넘기는데 고개 갸우뚱하게 하는 기사 몇 꼭지가 눈길을 끌었다.
‘중국어 강의 신설’, ‘대학원생의 눈물 모은 생수통’, ‘학교 빵 매출 급증으로 등록금 10% 인하’ 따위의 기사는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총장과 학생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총장 밥약 사업’ 잠정 중단”을 알린 기사가 특히 그랬다. “과다한 식사로 총장이 비만으로 고생하면서… ‘밥약 부총장’ 임명안이 제기됐다”는 사연을 보며 요즘 학생들은 총장과 먹는 밥을 ‘약’(藥)이라 생각한다, 지레짐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밥약’은 ‘밥 먹는 약속’이라는 것이다.
혼자 밥 먹는 것을 ‘혼밥’, 이런 무리를 ‘혼밥족(-族)’이라 한다는 걸 떠올리니 그럴듯했다. 관련 신어를 찾으니 ‘밥터디’가 나온다. ‘따로 공부하다가 밥만 함께 먹는 모임’, ‘함께 밥 먹으며 공부하는 모임’으로 ‘밥+스터디(그룹)’를 합해 만든 말이다. 2005년 11월에 매체에 등장했으니 쓰임은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올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혼밥’, ‘밥약’의 형뻘인 셈이다. 그나저나 ‘총장밥약사업 중단’을 다룬 학보 기사의 ‘팩트’를 찾아 관련 정보를 뒤져보니 허망했다. 학보 상단에 ‘만우절 특집’이란 글자가 떡하니 박혀 있다. ‘중강’(中講), ‘눈물 생수통’, ‘등록금 10% 인하’ 또한 그랬던 것이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