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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매뉴얼 / 강재형

등록 2014-04-20 19:07

‘답’을 알고 나면 허무해지는 게 있다. ‘철조망 통과 요령’이다. 군대에서는 ‘(철조망) 위로, 밑으로, 절단, 폭파, 우회’ 이렇게 다섯 가지 방법을 적시한다. 철조망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 뻔한 방법을 숙지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전투나 이에 준하는 위급상황에서는 우왕좌왕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필드 매뉴얼(Field Manual), 흔히 ‘에프엠’이라 부르는 야전교범이 필요한 이유다. 기사 제목 “안이한 현장대처·지위체계 혼선…‘어이없는 정부’”에서 보듯 매체들은 ‘매뉴얼’이 없거나, 이를 지키지 않은 현실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매뉴얼’의 뜻을 ‘설명서’로 밝히면서, “‘설명서’, ‘안내서’, ‘지침’으로 순화”하라고 풀이한다. ‘응급상황 매뉴얼’, ‘현장학습 안전대책 매뉴얼’, ‘승객대피 매뉴얼’처럼 ‘서해 여객선 침몰 사고’에 즈음해 쏟아지는 ‘매뉴얼’은 곧 ‘지침(서)’인 것이다.

여객선이 침몰한 지난 수요일, 일터로 출근하니 책상 위에 ‘재난방송 내규’가 놓여 있었다. 두툼한 분량의 내규 가운데 ‘현장취재·방송 요령’에는 ‘(피해자들의) 심리적 안정 유도, 프라이버시 보호’ 지침도 들어 있다. ‘뉴스특보’ 진행자의 말에는 배려가 담겨야 한다. 갓 구조된 고등학생과 인터뷰하면서 대뜸 “당시 상황이?” “친구들은 어딨나?”고 묻는 것은 잔인하게 들린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뉴스특봅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재난상황 설명자에게) 어서 오십시오’ 따위의 상투적인 인사말은 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 때가 있다. 피해자 상황과 시청자 마음을 배려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17일 “일부 기자들의 섣부르고 경솔한 행동이 희생자 가족과 국민 여러분에게 상처를 줬다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렬히 반성하고 있다”며 “재난보도준칙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03년 ‘대구지하철 사고’ 직후 ‘재난보도준칙(안)’을 만들었지만 여태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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