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성당 마당 성모상 앞에 예년보다 이르게 철쭉꽃잎이 지면서 5월을 맞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매년 5월을 성모의 달로 정하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기리며 노래하고 기도합니다. 성모께 대한 천주교 신자들의 신심은 일부 개신교 신자들에게 마리아교라는 엉뚱한 오해를 받으면서도 선뜻 포기하지 않을 만큼 각별합니다.
성모의 달에 어버이날이 들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습니다. 저의 어머니 아버지는 지금부터 꼭 11년 전, 같은 해에 나란히 돌아가셨으니 가슴에 꽃 달아드릴 분도 안 계십니다. 저도 장가를 들었으면 손자가 몇은 될 나이인데 지금도 거리에서 빨간 카네이션을 달고 자랑스러워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면 부모님 생각에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어머니는 늘 눈물인가 봅니다. 세상에는 부모 때문에 고통을 겪는 자식들이 없지 않지만 자식으로 해서 새까맣게 타버린 가슴을 움켜쥐고 피눈물을 쏟는 부모들이 수백 수천 배는 더 될 터, 그중에 제일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일이라 합니다. 부모는 죽은 자식을 땅에 묻지 못하고 당신 가슴에 묻는다지요. 제가 아무리 부모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 해도 죽어가는 자식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버지와 똑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압니다. 미안합니다. 자식을 낳고 길러보지 못해섭니다.
우리의 근현대사만 보더라도 4·19, 5·18을 거치며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이 죽음으로 몰고 간 숱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어이없는 살인 행위는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로 이어지며 그들 부모의 가슴까지 무참히 난도질했습니다. 뒤늦게 자식에게 붙여진 민주열사라는 칭호로 상처 깊은 부모의 가슴이 아물겠습니까? 불과 석달이 채 안 된 지난 2월 경주에서는 한 재벌의 욕심이 갓 피어나는 아이들의 목숨을 여럿 앗았습니다. 아들딸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던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목쉰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합니다. 내일모레가 바로 그 어버이들의 날입니다.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는 억울하게 역모로 몰려 젊은 나이에 피투성이로 사형당하는 아들의 처절한 죽음을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지켜본 비운의 여인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그분을 세상의 모든 “여인 중에 가장 복된 분”(성모송의 일부)이라고 칭송합니다. 신앙고백입니다. 하지만 자식 잃은 어머니에게 그게 무슨 위로가 되고 훈장이 되겠습니까? 지금이 바로 그 성모의 달입니다.
저는 지금 세월호에서 어처구니없는 참변을 당한 영혼들에게 억지 의미를 부여해서 슬픔과 분노에 떨고 있는 유가족들을 위로한답시고 되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으려는 게 아닙니다. 이미 각종 매스컴이 총동원되었으니 구차하게 덧댈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어버이날 아침에 아빠 엄마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며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말없이 씩 웃기만 하는 얼굴 없는 아이들을 그려봅니다. 또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무죄한 아들의 주검을 십자가에서 내려 품에 안았던 성모님이 이 5월에 우리 아이들의 엄마와 똑같은 운명의 또다른 엄마가 되어 서로 부둥켜안고 함께 통곡하시는 꿈을 꿉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박종철의 아버지도 함께 계십니다. 모든 이들의 입에서 “아, 당신도 나처럼 슬픈 엄마군요, 가슴 찢어지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군요” 하는 탄성이 절로 터집니다. 오로지 권력과 돈에만 눈먼 잘나 빠진 어른들이 우리의 아이들을 죽였다고, 내 자식은 죽어서는 안 될 죽음이었다고, 그러니 일어나라는 함성이 산천에 메아리칩니다. 어둠과 거짓을 벗어난 새 하늘, 새 땅이 저만큼 보입니다.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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