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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어떤 당사자가 될까? / 법인 스님

등록 2014-05-09 19:01

법인 스님 해남 일지암 암주
법인 스님 해남 일지암 암주
5월 신록의 숲 속에 연등이 선연하다. 부처님오신날이 지난 오늘까지 나는 산중 암자 마당에 걸어놓은 등을 내리지 않고 있다. 가까이에 있는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춥고 어두운 물속에 갇힌 세월호의 생명들을 추모하고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등을 차마 걷어내지 못하겠다. 보이는 만물과 들리는 모든 소리가 슬픔과 아픔의 무게로 가슴을 짓누른다. 잔혹한 봄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오신날, 내가 내게 물었다. 부처님은 무슨 연유로 이 땅에 오셨는지,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역사의 마당에 석가모니는 어떻게 오셨는지를. 그분이 인도 땅에서 증명해 보이신 답은 분명할 터인데, 오늘 대한민국 이 땅에서 나는 부처님 오신 뜻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그분이 걸으신 삶의 행적에서 너무도 멀리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존엄을 지켜내지 못하고 돈의 독점에 눈이 어두워 상생의 길을 거부하는 우리 시대의 어리석음이 너무나 불쌍하고 초라하다.

그러나 어둠이 영원한 어둠이 아니듯 중생의 미망 또한 영원한 미망은 아닐 것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사라지고 지혜와 자비심이 함께하면 중생의 미망과 고통은 희망과 환희로 몸을 바꿀 것이다. 나의 몸을 바꾸는 일, 세상의 몸을 새롭게 바꾸는 일, 그것은 바로 우리가 시작해야 할 일이 아닐까? 돈과 권력의 가치에서 생명의 가치로 나아가는 일 말이다.

석가모니의 일화를 소개한다. 어느 해 가뭄이 몹시 들었다. 물이 말라 논바닥이 타들어 갔다. 그래서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람들은 서로가 자기 논에 물을 많이 대려고 한밤중에 물꼬를 자기 마을 쪽으로 돌려놓는다. 마침내 말다툼이 일어나고 집단 패싸움 직전에 이른다. 이 소식을 듣고 부처님은 다툼의 현장에 간다. 저간의 사정을 다 듣고 난 석가모니께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이여, 물이 중요한가, 사람의 목숨이 중요한가?” 석가모니의 단순하고 핵심적인 물음에 마을 사람들은 어리석음을 깨닫고 화해했다.

또 석가모니는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물었다. 사치와 쾌락에 젖어 사는 것이 중요한가, 참다운 자신을 찾는 것이 중요한가를. 그리고 분명하게 선택할 것을 요구했다. 이 양자택일의 물음 앞에 사람들은 분명하게 답했다. 돈보다 생명이 소중하고, 절제 없는 쾌락보다 고요한 평온과 자비를 나누는 기쁨이 행복의 길이라고.

다시 오늘 우리 이웃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만약에 내가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 조금의 편법을 쓴다면 수천만원의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자. 남에게 묻지 말고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이해관계의 당사자가 된다면 이런 순간 옳고 그름의 선택 앞에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옳은 선택을 위해 손해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세월호 선주는 이웃을 자기의 생명처럼 소중하게 모시는 생명의 당사자가 되지 못하고 물욕의 당사자가 된 것이다.

또 이번 세월호 참사 앞에서 논평가로 살아온 사람과 당사자로 살아온 사람이 극명하게 갈렸다. 표정과 온기 없는 제3자적 화법으로 유가족을 위로하는 사람에게서 왜 나는 논평가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일까? “미안하다, 사랑한다, 어서 돌아오라”는 애절한 바람에서 고통의 당사자로 살아가는 이 땅의 민초 보살들을 본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고 보살은 말한다. 내가 아프지 않으면서 중생의 아픔을 말하는 자는 논평가다. 당사자는 자책하고 논평가는 질책한다. 석가모니는 중생을 내려다보지 않으셨다. 늘 당사자의 가슴으로 사람과 함께했다. 부처님은 날마다 이렇게 오신다.

법인 스님 해남 일지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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