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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4월16일 이후로 / 하성란

등록 2014-05-16 18:21수정 2014-05-17 11:38

하성란 소설가
하성란 소설가
4월16일 이후로 매일 새벽잠에서 깼다. 발끝이 차가운 것에 닿은 듯 순식간에 잠이 달아나면 늘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 우리 아이들과 이웃이 있다. 어느 날은 믿기지 않아 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은 팔을 꼬집히듯 생생해서 꿈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주히 아침을 준비하면서 악몽보다 더한 아침을 맞고 있을 이들을 떠올렸다.

그날 아침 속보와 함께 뜬 사진을 기억하고 있다. 어? 배가 침몰해? 가슴이 철렁했지만 낙관했다. 이런 대명천지에 수백명이 탄 여객선이 가라앉게 가만 놔둘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 들렸다. 안도감과 동시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럼 그렇지. 그것이 오보라는 소식을 들은 뒤에도 승객들이 구조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뒤늦게 돌아온 아이들의 휴대폰 속 동영상을 통해, 물 밖 우리와 똑같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억장이 무너졌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었나? 누굴 믿고 있었나? 이렇듯 목소리가 생생한데 이제 이 아이들은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싶었다.

사고 후 하루 이틀, 생존자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 살아 있을 이들에게 줄 수 있다면 내 남은 삶의 일년을 주고 싶었다. 큰애와 작은애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숨을 불어넣어 300여명 그들의 목숨이 사흘 늘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속수무책 시간만 흘렀다.

한 후배는 다리가 아픈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가 물속에서 퉁퉁 불은 자신의 발 한쪽을 보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친정어머니는 작은애를 돌봐주던 몇해 전으로 돌아가 그 애가 연못에 빠진 것을 보고 목 놓아 울다 울다 깼다고 했다. 하지만 속속 밝혀지는 현실은 악몽을 앞질렀다. 해경은 창문 안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승객을 보고도 모른 척 그대로 방치했다.

살아 돌아오는 이 없었다. 생환을 바라던 가족들은 어느새 죽어서라도 품에 돌아오기를 바랐다. 주검으로 돌아왔는데도 축하한다는 인사를 주고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굴을 못 알아봐도 좋으니 돌아만 와달라고, 이제 집에 가자고, 눈물을 훔치는 아버지의 이마는 바싹 타들어가 있었다.

어제 새벽에도 잠에서 깼다. 순간 움찔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이제 겨우 한 달이 흘렀다. 아직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다. 실종자 수가 주는 만큼 인터넷 기사들 속에서 세월호 보도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분노했었다. 대학가의 한 분식점에서 밥을 먹다 아무렇지도 않게 연예인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학생들의 대화에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지하철 환승역, 우르르 계단을 내려오는 인파 속에서 나도 모르게 실종자 수만큼의 인원수를 헤아리기도 했다. 두 집 걸러 한 집 아이를 잃은 안산의 한 마을과 함께 ‘거리는 한 집 걸러 울지 않은 집이 없었다’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그게 겨우 일주일 전이었다. 겨우 사흘 전이었다.

너무 힘들어 회피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애도의 시간은 끝났다고 관성처럼 일상으로 되돌아가려 했는지도 모른다. 씨랜드를, 삼풍을 잊었듯이 또 어물쩍 잊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지켜볼 것이다. 이렇게 역사는 되풀이되어왔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봐 두렵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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