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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어른이 되고 싶어 / 권보드래

등록 2014-06-06 18:23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그때 우리 선생님들은 다 어른이었는데.” 가끔 탄식하듯 말을 나누곤 한다. 한때는 나이 들면 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다 자랐노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40대 한복판에서 돌이켜보니, 불혹은 웬걸, 공자께서 어째 그런 농담을 다 하셨담? 혹시 그땐 평균수명이 짧았던 만큼 조로해 버렸던 탓인가?

젊은 시절 바라본 스승들은 확실히 ‘불혹’할 것 같은 어른이었다. 어떤 선배들은 20대 때부터 어른 같았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듯한, 다 완성되어 다듬을 몫만 남겨둔 듯한 인상이 선연했다. 멋대로 셈하자면 대략 60년대산 세대부터 이 인상이 바래기 시작한다. 평생 익지 않을 듯 나이 먹어서도 우왕좌왕하는 사람이 주변에 꽤 많다. 정답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가끔 수업시간에 묻는다. “<소년> 발행했을 때 최남선이 몇살이었는지 알아요? <무정> 연재할 때 이광수는 몇살이었게요? 이어령이 <우상의 파괴> 발표한 건 언제?” 각각 19살, 26살, 23살이라고 짚어내면서 학생들은 번번이 탄성을 지른다.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보세요. 내 나이 또래 누군가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1910년대 혹은 1950년대, 폐허를 가로지르던 시절이다. 기성의 가치가 증발해 버렸을 때 젊은이들은 두려우면서도 참 홀가분했을 거다. 당신들은 그때 벌써 어른이었겠구나.

얼음과 불의 시간을 다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나는 아직 내 바닥을 모른다. 내 취향과 가치관과 정치적 선택이란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 페스트가 닥쳐왔을 때 유럽의 도시들에서 그랬다지. 숙녀가 요란한 차림새로 묘지를 배회하고, 수전노가 돈을 물 쓰듯 풀고, 한편 소문난 범죄자가 고결한 성인으로 화했다던가. 공포가 턱밑까지 닥쳐올 때 누가 어떤 존재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거꾸로 행운 앞에서도 그렇다. 지나친 행운에 먹혀버린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자기 자신을 모르는 채 어른이 되기란 불가능하다. 어찌나 무원칙한 어미에 믿을 수 없는 선생인지, 홀로 부끄러울 때가 많다. 이 나이토록 갈팡질팡이라니. 한동안 차라리 이 좌표를 잘 쓸 수 없을까 생각했다. 어른인 체하는 폐는 좀 덜할지도 모르잖아? 임어당(린위탕) 말마따나 다들 청소년기에 완성돼 버린 세상이란 얼마나 지루할까?

얼마 전엔 아예 ‘평생 사춘기’라는 표어마저 마련했다. 걸핏하면 “나 사춘기”임을 들먹이는 큰애에게 “엄마도 사춘기거든!” 질러댄 후의 일이다. 점점 조절하는 법을 배워갈 뿐이지 한평생 마음은 널뛴단다. 왜, 10대라는 구분이 2차대전 후의 발명품이라고 하지 않던? 우리는 다 20세기에 붙박인 채 나이 들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단다.

올해 봄을 겪으면서 마음이 좀 바뀌었다. 40대의 열애에 50대의 식스팩에, 나뿐 아니라 누구나 어른이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시절인가 보다. 나이 들었다고 미혹될 권리가 없을까 보냐. 100살 수명이라는데 고용은 불안정한 시절에 우리는 오래도록 길어진 청춘의 한복판을 헤맨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이제 어른이 돼야겠다고 생각한다. 튼튼히 뿌리내려 어지간한 도끼질에도 굳건했으면 싶다. 20~30년을 기약하면서 마음을 그 길목에 세워놓고 나니 3·1 운동이 꺼져갈 무렵 폭탄을 터뜨렸던 강우규가 문득 떠오른다. 결행 당시 그의 나이 66살, 그가 소속돼 있던 대한노인동맹단 가입 자격은 45살부터였다. 큼, 이제 노인동맹단에 가입할 수 있는 나이다.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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