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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한국은행은 중립적인가 / 이경

등록 2014-06-10 18:12

이경 논설위원
이경 논설위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30일 비은행 금융협회장들과 만났다. 보험, 증권,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저축은행, 여신금융 관련 협회 대표들과 관심사를 논의한 것이다. 이 총재는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세계 금융위기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한은의 금융안정 책무 수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며, 이들 기관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은 총재가 비은행 금융협회장들과 협의회를 연 것은 지난해 두 차례 등 모두 세 차례다. 비은행 금융기관 시이오들과 만난 것을 더해도 이쪽과의 회동은 네 차례뿐이다.

한은이 소통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바람직한 모습이다. 경제 흐름에 맞춰 적절한 통화정책을 세우고, 또 이 통화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게 하려면 소통이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총재가 주재하는 협의회와 간담회를 여럿 개최하는 것은 이런 차원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들 모임이 편향돼 있어서 문제다. 참석자들의 분포가 집단이나 계층별로 고르지 않다. 이는 한은의 보도자료를 분석해 보면 금세 드러난다.

편의상 2009년 1월 이후의 실태를 살펴보자. 한은 총재가 초청인인 협의회와 간담회가 모두 141회 열렸다.(기자 간담회와 한은 총재가 비공식으로 갖는 모임은 제외) 시중은행장들과의 회동인 금융협의회가 58회로 가장 많고, 다음이 각종 단체·기관 대표 등과의 만남인 경제동향 간담회로 53회였다. 그리고 투자은행(전문가)과의 간담회가 11회, 중소기업 시이오와의 간담회가 9회, 대기업 시이오와의 간담회가 7회였다. 한은으로서는 모두 필요한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기업, 중소기업 시이오들과 얼굴을 맞대면서 소비자·노동자 대표와는 회동을 하지 않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한은이 통화정책을 어떻게 펴느냐에 따라 소비자와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 조정과 신용 배분을 통해 물가를 관리하는데, 이 물가가 소비자와 노동자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 소비자들은 현재와 장래 물가수준을 고려해 소비와 지출의 크기뿐 아니라, 대출을 받을지 여부를 결정한다. 또 노동자들은 임금협상을 할 때 물가상승률을 중요한 잣대의 하나로 삼는다. 게다가 한은의 주된 설립 목적이 물가안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 집단과의 관계를 경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소비자·노동자 대표 외면은 경제동향 간담회 참석자들의 면모를 봐도 확인된다. 이 간담회에는 연구소 대표와 대학교수, 업종별 및 재계 단체가 비슷한 비율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한은 총재가 여기서 만난 사람이 모두 308명에 이른다. 하지만 소비자 대표는 딱 1명이었고, 노동자 대표는 아예 없었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이 각각 11회, 9회, 8회, 4회 자리를 함께했다.

한은이 의견을 나누는 집단과 계층이 이처럼 편향된 현실을 두고 한은의 중립성(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하면 지나친 것일까. 한은은 물론 중립적 견지에서 통화정책을 수립·집행한다고 말하겠지만 쉽게 수긍하지는 못하겠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이 총재가 간담회와 협의회 수를 줄일 뜻을 밝혔다고 한다. 투자은행(전문가)과의 간담회를 없애고, 중소기업·대기업 시이오와의 간담회는 필요할 때 열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리하면 기울어진 저울추가 조금은 바로잡힐 수 있겠지만 균형상태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정치권과 시장으로부터 독립한다고 해서 곧바로 중립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한은이 되새겼으면 좋겠다.

이경 논설위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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