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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결정권자는 정상인가 / 여현호

등록 2014-06-17 18:27수정 2014-06-17 18:58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나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창극 사태가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극우에 친일인 인사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대체 왜 그런 이를 택했을까. 여야를 막론하고 사퇴 요구가 빗발치는데도 대통령은 청문요청안을 내어 정면돌파를 시도하려 한다. 대체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릴까. 도무지 알 수 없으니,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대통령 입장에서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볼 일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 카드는 기업으로 치면 실패한 투자, 부도난 회사다. 국민 세 사람 중 두 사람꼴로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니 당연하다. 도산법에선 부도난 기업이 회생 대상이 되려면 청산가치보다 존속가치가 커야 한다. 청산가치는 지금 기업을 접고 자산을 매각했을 때 회수 가능한 액수다. 대개 장부가의 60% 정도다. 존속가치는 앞으로 10년 정도 기업을 계속 운영했을 때의 예상이익과 잔존 자산가치를 현재가격으로 환산한 액수다. 대개 장밋빛 전망이 많다.

‘문창극 카드’는 이익은커녕 손실이 커 보인다. 가장 큰 손실은 국민소통의 종식이다. 다수가 거부하는 그를 총리로 고집하는 것부터가 대통령의 불통이다. 그는 국민 정서와 반대편에 서 있기도 하다. 정신대 등 일제 만행에 대한 분노는 지역·이념·세대로 갈린 와중에도 그나마 국민 다수가 공유하는 정서다. 월드컵 축구에서 일본을 이긴 코트디부아르의 골에 다들 기뻐하는 이유가 달리 있지 않다. 문 후보는 이 ‘공통의 무엇’을 훼손했다. 대통령이 그를 고집한다면 대통령 역시 여기서 멀어지게 된다. 국민의 신뢰와 공감이 정치적 자산이라면 그 자산의 잔존가치가 줄어드는 것이다.

당장의 손실로는 7·30 재보선이 문창극 기용에 대한 찬반으로 흘러 여당이 불리해질 가능성이다. 강행 끝에 문 후보가 중도 낙마했을 때의 충격도 클 것이다. 설령 그가 총리가 된다 해도 이미 한 말이 있으니 정치, 외교, 사회적 통합 등 어느 쪽에서도 제구실을 하기 힘들다. 되레 두고두고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다. 문창극 카드의 존속가치는 마이너스다.

반면, 지금 문창극 카드를 접는다면 청와대의 사람 보는 눈, 인사검증 체제가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그 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실장도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정국운영능력에 대한 의심 따위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그래도 문창극 카드를 고수했을 경우보다는 나아 보인다. 선택을 해야 할 이유다.

청와대가 ‘강행’을 선택했다면, 그 이유는 ‘여기서 돌아가기엔…’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이야말로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그동안 들인 노력이나 시간, 비용에 연연하다가 현재의 손해보다 더 큰 손실을 부르는 비합리적인 행동양식이다.

이번 일도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답은 뻔하다. 애초 총리 지명 때의 목표는 지금 달성하기 어렵게 됐다. 문 후보는 ‘국가개조’의 적임자도 아니거니와, 화합이나 소통도 기대할 수 없는 인물로 드러났다. 억지로 총리로 만든다 해도 긍정 효과보다 비용이 더 클 듯하다. 무엇보다 청문회 통과부터 불가능해 보인다. 결정권자 입장에선 고집을 부릴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갈 데까지 가보자’고 한다면 무지나 현실부정, 미련과 집착, 오기 따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결정권자로선 비정상적 상태다.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다. 실제 결정권자가 대통령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물러서지 않을 수 있겠다. 그는 누구인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박근혜 '돌파 참극' [21의 생각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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