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빈 논설위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세월호는 이제 예전의 세월호가 아니다. 인천~제주 항로를 오가는 여객선으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 대신 우리 사회의 시공을 나누는 상징적 변곡점으로 살아 있다. 지금부터 돈이 아닌 사람, 기업의 이익과 성장보다는 국민 안전과 생명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침하라! 세월호 희생자들이 우리에게 남긴 엄중한 명령이다.
하지만 변침을 거부한 채 기존 항로를 고집하려는 힘도 만만찮다. 먼저 정부가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세월호 참사 뒤 딱 두 달째인 지난 16일 정부는 행정규제기본법 일부개정안의 입법을 예고했다. 정부안은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으로 규제 체계를 ‘원칙 허용, 예외 금지’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규제의 영향을 분석할 때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포함하며, ‘규제비용총량제’를 도입해 정부 부처마다 규제정책의 총량 한도를 두며,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 국회 법률과 지방의회의 조례에 대한 개정 또는 폐지 의견 제출권을 주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규제개혁이라기보다는, 한마디로 규제완화의 디딤돌이 되는 입법예고안이다.
세월호 참사를 망각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이런 입법을 추진할 수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세월호 침몰과 같은 대형재난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물론 규제완화를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선박 연령 제한의 완화, 해운사의 안전점검 보고의무 축소와 같은 규제완화가 위험을 키웠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떤 규제든 선악으로 구분할 순 없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맹신적인 명제를 바탕으로 규제에 접근하고 있다. 절대악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위험한 발상이, 정부가 입법예고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에 그대로 녹아 있다. 법률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이르기까지 모든 규제 법령에는 비용이 뒤따른다. 규제를 풀면 주로 기업에는 혜택이 가지만 사회적 비용 역시 발생한다. 재난 위험을 키우든지 환경을 해치는 경우다. 반대로 기업의 부담이 공적 편익을 높이는 규제도 있다. 따라서 사적 비용과 공적 편익의 균형을 맞춰서 규제를 설계해야 한다.
규제 설계의 어려움은 공적 편익의 경우 사후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규제의 비용 쪽만 따져서 총량을 묶겠다는 규제비용총량제는 그야말로 외눈박이식 접근이다. 더구나 정부안에 따르면, 규개위가 모든 규제에 대한 심사 권한을 갖는데, 이는 심각한 ‘이해 상충’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김기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조사한 바로는, 2013년 4월 현재 규개위의 민간위원 15명 가운데 8명이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거나 맡았던 인사들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를 골라 위촉할 뿐인데도 막강한 권한을 거머쥐고 있다. 여기에다 이번에는 사실상 국회와 지방의회의 입법권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하자는 게 정부안이다.
세월호 참사 뒤 대부분의 국민은 희생자와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공감하면서 기억의 의무감을 힘겹게 쌓아가고 있다. 반면에 ‘세월호의 희생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은 아무래도 건다짐인 듯하다. 정부는 이제 세월호의 충격에서 벗어나 빨리 ‘정상’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아울러 ‘규제는 쳐부수어야 할 원수!’라는 대통령의 신념에 따라 질주하는 모습이다. 세월호에 대한 ‘국민의 기억’과 ‘정부의 망각’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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