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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지방 식민지’ 독립투쟁

등록 2014-06-22 18:18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6·4 지방선거의 승자는 누구인가? 야당인가, 여당인가? 아니면 무승부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승자는 ‘중앙’이요, 패자는 ‘지방’이다.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자는 정신 나간 구호에서부터 우리 지역 출신 대통령 한번 만들어보자는 ‘지역 대망론’에 이르기까지, 중앙 권력을 염두에 둔 이슈와 전략이 지배한 선거를 지방선거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놀랄 일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1995년 6월27일 제1회 동시지방선거 이래로 실시된 여섯번의 지방선거가 모두 그랬기 때문에 6·4 지방선거가 특별히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우리의 불감증이다. 지방선거가 계속 그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도 그걸 자연스럽게 여기는 우리의 의식은 ‘광기’라고 부를 만하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광기란 개인에게는 예외가 되지만 집단에게는 규칙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개인적으론 더할 나위 없이 똑똑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중앙-지방 문제에 대해선 집단적으로 미쳐 돌아가는 걸 어찌 달리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지잡대’ ‘지방충’ ‘지균충’ 등과 같이 사이버상에 떠도는 지방 모독의 단어들이 스스로 입증해 보이듯이, 멀쩡한 젊은이들도 중앙-지방 문제만 나오면 갑자기 사악한 단세포 동물로 변신해버린다. 왜 그럴까?

지방은 중앙의 식민지다! 지방 식민지화는 인정 욕구의 획일화·서열화는 물론 대학입시·사교육 전쟁, 극심한 빈부격차, 지역주의, 정치의 이권투쟁화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주요 문제들의 핵심 원인이다. 그럼에도 점잖은 사람들은 지방식민지론에 대해 그렇게 위험한 선동을 해서야 쓰겠느냐고 눈살을 찌푸린다. 당연하다. 그들은 중앙에 거주하는 특혜를 누리는 기득권자들로서 공감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에도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건 중앙으로 옮겨갈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갖추고 지역 식민지의 수령 노릇을 하면서 이익을 취하는 엘리트 계급이다.

광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진실을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엉터리 정신분석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강 교수, 이제 지방 문제 그만 이야기하지.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말해야 설득력이 있지, 당신 지방에 있으면서 그런 소리 백날 해봐야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에 대한 한풀이로 보일 뿐이야.” 나는 서울 교수들로부터 이런 우정 어린 충고를 몇 차례 들었지만, 그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지방 문제에 대해 글을 쓴 걸 본 적이 없다. 한풀이로 보이건 말건,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방에도 샘을 파는 대신 물을 얻어먹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젠 마음잡고 이곳 생활을 즐기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몇년 전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을 때, 내가 사는 이곳 전주에서 들은 충고다. 진정 나를 생각하는 선의에서 비롯된 충고이긴 했지만, 이 또한 내가 서울 소재 대학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에 대한 한풀이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었다.

그런 일을 몇차례 겪고 나자 분노와 비애로 속이 쓰렸다. 그래서 한동안 지방 문제에 대해선 말을 아꼈는데, 최근 전북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다가 내 말에 스스로 도취하고 흥분한 나머지 “다시 힘을 내 지방식민지 독립투쟁에 나서겠다”고 공언을 하고 말았다. 이래서 강연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지방민들 다수만 마음먹으면 지방 식민지화는 얼마든지 깨부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마음을 먹지 않는 걸까? 맹목적으로 길들여진 ‘자기파괴적 연고주의’와 더불어 체념의 지혜로 오인되는 ‘학습된 무력감’이 주된 이유이다. 하지만 그런 세월을 20년이나 보냈으니 이젠 달라질 때도 되었다. 앞으로 정교한 지방 식민지 이론과 더불어 독립투쟁의 당위성·실천방안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릴 것을 약속드린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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