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을 제 나름의 생각으로 설명하라.” 이번 학기말 시험 문제의 하나다. ‘정답 없는 문제’의 답은 참으로 기발했다. ‘운전석에서 조수석 연인과 손잡을 때 내미는 방향’, ‘결혼반지 끼는 반대 손 쪽’이라 밝힌 학생은 한창 연애 중인 듯했다. ‘컴퓨터 자판에서 한글 모음이 있는 쪽’, ‘컴퓨터 화면에서 창 닫기(x)가 있는 방향’, ‘마우스에서 설정이 목적인 버튼이 있는 쪽’은 펜보다 자판에 익숙한 세대임을 드러낸다. ‘지도를 정면으로 바라보았을 때 독도가 있는 쪽’은 ‘애국심’ 투철한 학생, ‘남성복의 단추가 달려 있는 쪽’은 의상디자인학과 학생, ‘자음 ㄷ의 열려 있는 쪽’은 국문과 학생, ‘피아노 건반의 음역대가 높아지는 방향’은 음대생, ‘도다리 주둥이를 마주보았을 때 눈이 쏠려 있는 방향’은 횟집 딸? 아무러면, 또 아니면 어떤가. 골똘히 말뜻을 새기려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 그것으로 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오른쪽’을 ‘북쪽을 향하였을 때의 동쪽과 같은 쪽’으로 설명한다. ‘오른손 방향’(한+ 국어사전)으로 싱겁게 풀이한 것도 있지만 국어사전 대부분과 북한의 <조선말대사전>도 뜻풀이는 같다. 영어권 사전의 뜻풀이 ‘북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동쪽’처럼 동서남북에 기대어 설명하는 방법은 동서를 가리지 않는다. 옛날 국어사전은 어땠을까. ‘사람이 동쪽으로 향하여 남쪽이 되는 곳’(조선어사전, 1946년), ‘동쪽으로 향했을 때 남쪽과 같게 되는 편’(신찬국어대사전, 1963년)처럼 ‘동쪽’이었다. ‘동쪽’이 ‘북쪽’으로 바뀐 것은 네 방위를 ‘북남동서’로 부르는 서구 문화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숫자 10의, 0이 있는 쪽’.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에 나오는 ‘오른쪽’의 정의는 신선하다. 방위를 알 수 없어도, 문화가 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다. 소설가 김훈은 ‘언어 존재의 목적은 소통’이라 했다. 소통은 말뜻의 제대로 된 정의와 이해에서 비롯한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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