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호 논설위원
7월22일이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의 유효기간이 끝난다. 두 달짜리 사전영장부터 이례적이었는데 그마저도 다 지나간다. 그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듯하다. 유씨에게 사상 최고액의 신고보상금을 걸었고 임시 반상회까지 열었다. 유씨 친인척과 측근, 조력자들을 눈에 띄는 대로 잡아들였고, 밀항을 막겠다고 군대까지 동원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지금 유씨의 행방을 까맣게 모른다. 남은 며칠도 요행이 없다면 잡기 어려울 성싶다.
검찰로서는 유씨가 늪 같겠다. 이제 선택지는 몇 안 된다. 사전구속영장을 다시 받는다면 의지를 과시하고 잠시나마 문책론을 잠재울 순 있다. 하지만 또다시 이 늪에서 허우적대야 한다. 그나마 효과도 의심스럽다. 지난 두어 달 동안은 유씨를 잡는다는 호들갑으로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에 대한 국민적 이목을 유씨에게 돌릴 수 있었다. 이제는 세월호 참사에 박근혜 정부의 총체적 부실이 있었음이 국회 국정조사와 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터다. 세월호가 침몰한 날 청와대엔 회의도, 보고도 없었다. 컨트롤타워 기능은 언감생심이다. 감사원은 세월호 참사가 정부의 총체적 업무태만과 비리가 집약된 결과라고 규정했다. 대통령부터 일선까지 대한민국이 부재 상황이었는데도 여태 아닌 척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제 다시 유씨를 겨냥해 나팔소리 높여본들 눈길이 그쪽으로만 가진 않는다.
그렇다고 못 잡겠다며 기소중지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최종 책임자라면서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유씨만 손가락질했다. 열흘 전에도 “유병언에 대해서 끝까지 추적해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서슬이 여전하니, 검찰 수뇌부가 문책을 각오하지 않고선 기소중지로 결정하기 어렵다. 남은 선택은 유씨의 수배를 유지하면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먼저 기소해 구상권 청구소송에 활용하는 정도다. 검찰로선 망신 끝의 궁여지책이다.
더 망신스러운 일은 따로 있다. 검찰 업무의 본령은 기소와 수사 지휘다. 중요 사건에선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서기도 하지만, 이번처럼 피의자 검거까지 맡겠다고 설치고 나선 일은 없었다. 이유는 다들 안다. 대통령의 채근 때문이다. 유씨를 잡기 전까진 검찰청사에서 퇴근하지 않겠다는 과장된 제스처도 청와대 눈에 들겠다는 생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승진 누락을 이번 기회에 만회하겠다는 담당 검사장의 욕심에서건, 검찰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을 얻겠다는 계산에서건 그런 ‘과잉’은 꼴사납다. 검찰의 정치중립 따위는 멀찌감치 내팽개친 것이니 더욱 위험한 일이다.
검찰의 정치권력 영합이 이 일에 그치지 않으니 더 걱정이다. 김진태 검찰총장 취임 뒤 6개월여 동안 정권이나 여당과 관련된 사안 가운데 권력의 이익과 기대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결정된 사건은 없다.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사건 등에서 검찰의 결정은 하나같이 청와대나 새누리당이 결정했으면 꼭 그렇게 했음 직한 것이었다. 정권과 한몸이 된 정치검찰의 익숙한 모습이다. 무성했던 검찰개혁 논의 끝인데도 노골적인 정치편향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으니 과거 회귀보다 더한 퇴행이다.
그런 퇴행의 구덩이가 검찰에겐 편한 것일까. 이쯤에서 멈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돌아봐야 할 것 같은데도 그런 모습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대통령도 후보 시절 공약한 검찰개혁을 잊은 듯하다. 둘러봐도 안타까움만 가득할 뿐, 개혁의 동력은 찾기 어렵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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