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논설위원
“호리호리한 몸매에 까만 머리칼과 흰 피부, 미소를 머금은 창백한 얼굴에는 애수가 깃든 듯했다.” 명성황후에 대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묘사인데, 언뜻 박근혜 대통령의 인상이 스쳐 지나간다. 명성황후는 여덟살 때 부모를 여의고 고향 여주를 떠나 안국동의 감고당에서 외롭게 자란다. 감고당은 직계 조상인 인현왕후가 태어난 집이다. 그는 평생 인현왕후를 흠모했다는데, 이 집에서 왕비의 꿈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감고당은 청와대로, 인현왕후는 육영수로 대체하면 이야기가 얼추 닮았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을 이어주는 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의 생존을 책임진 운명이다. 허나 지금까지는 박 대통령마저 명성황후의 실패 행로를 밟아나가는 듯하다.
둘 다 전통적인 종주국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명성황후는 위기만 닥치면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였다. 임오군란 때 충주 장호원의 국망산 골짜기에 숨어 지내면서도 고종에게 편지를 보내 청나라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청군 100명이 호위를 맡아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갑신정변 때는 밥을 먹고 나서 청군내원(淸軍來援)이라는 밀지를 그릇 밑에 숨겨 밖으로 내보냈다. 결정적으로는 동학농민전쟁 때 청군을 불러들여 일본군마저 들어오게 한 거다. 사자와 호랑이가 한꺼번에 들이닥쳤으니, 찢기고 물린 건 조선 민족이다.
박 대통령도 전시작전권을 계속 맡아달라고 미국에 통사정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사실상 편입돼 가고 있다. 중국 시진핑과 마주보며 미소지은 게 엊그제인데, 곧 미국·일본과 함께 항공모함이 참여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그것도 중국의 심장부를 겨누는 제주 남서쪽 해상에서다.
내부의 경쟁자에게 지나치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비슷하다. 명성황후에게는 대원군이 문제였다. 동학군이 대원군을 받들어 모실 것이라는 얘기를 듣자 걷잡을 수 없는 복수심으로 몸을 떨며 “청나라나 왜의 포로가 될지언정 참을 수가 없다”며 청 파병을 요청한다. 박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며 북한이 무너지기만을 바라고 있다. 북한이 대화를 제의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 남북 대결 상황은 미국이 엠디를 구축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면 엠디는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미국이 그걸 노리고 북한과의 협상을 꺼리는지도 모른다.
명성황후에게는 시간이 있었다. 갑신정변 직후부터 갑오농민전쟁까지의 딱 10년이다. 톈진조약으로 청군과 일본군이 동시에 철수했으니, 두 나라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닦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허송세월하고 말았다. 고종은 판소리를 즐겼고, 황후는 궁중에서 굿판을 벌였다. 민씨 일족은 더 똘똘 뭉쳐 요직이란 요직은 깡그리 다 차지했다.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는 인아거일책(引俄拒日策)을 시도해보았으나 스스로 힘을 기르지 않았으니 다 헛되었다. 끝내 일본 낭인의 칼끝에 시해당하고 말았다.
동북아의 지각판이 요동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는 그저 ‘한-미 동맹’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있다. 골라 쓰는 사람은 하나같이 사대주의자요 강경보수다. 성씨가 다 다른데도 마치 일가붙이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의 국력이 19세기 말과는 하늘땅 차이라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 우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안달이어서 몸값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균형외교를 펼 경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아니라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거양득의 위치다. 나라를 망친 비운의 왕비가 되느냐 나라를 살린 국모가 되느냐는 박 대통령에게 달렸다.
김의겸 논설위원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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