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논설위원
공은 부하한테 돌리고 책임은 내가 진다. 누구나 다 아는 리더십의 경구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사기를 먹고사는 군에서는 이런 미덕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군은 이와는 정반대로 ‘공은 나에게 책임은 부하에게’ 정신이 지배하는 듯하다.
동부전선 총기난사 사건 전개 과정을 지켜보면서 든 가장 큰 의문은 그 많은 군 고위 간부들과 장성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였다. 나라를 믿고 군에 보낸 생때같은 아들이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오고, 수색대끼리 총격전을 벌이고, 군의 각종 거짓말과 은폐 작전이 물의를 빚고 있는데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책임 있는 높은 분들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15일에 나온 육군의 사건 수사 결과 발표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 사건은 병사들 사이의 따돌림과 무시, 놀림이 모든 원인이 되고 만 형국이다. 군 인사 관리 체제의 허점이나, 병영 관리의 근본적 문제점이 무엇인가 등에 대한 책임 규명도, 진지한 성찰도 없다. 국민을 속인 군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책임자 처벌도 밑으로 내려갈수록 가혹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후한 ‘상후하박’의 전형이다.
이번 사건으로 구속된 소초장의 죄목은 “어려운 현장에서 부하들과 함께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제반 조처를 해야 하는데 그 지휘책임을 다하지 못한 과오”(선종출 육본 헌병실장)라고 한다. 사건 발생 뒤 유선을 통해 인접 초소에 지원요청을 할 수 있었는데도 직접 달려가서 부대를 이탈했다는 것 등이 구속 사유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허둥대고 우왕좌왕한 것은 그의 윗선 지휘관들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엄밀히 말해 ‘근무지 이탈’이나 ‘부하들과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지 않은 죄’로 말할 것 같으면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야말로 가장 으뜸이다. 그는 사건 발생 20일 전쯤에 국가안보실장으로 지명받았으나 사건이 났을 때는 분명히 국방부 장관 겸임이었다. 일의 우선순위를 따져봐도 총기난사 사건 처리에 진력하는 게 마땅했으나 그는 국가안보실장 지명을 핑계 삼아 현장을 떠나 ‘인접 초소’로 피신했다. 그가 여전히 국방장관이었음을 국민이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도중 국방장관 이임식을 하겠다며 국회를 떠나면서였다.
물론 일선 소대에서 일어나는 사건까지 국방장관이 온전히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에게 책임을 통감한다며 머리를 숙이는 최소한의 예의도 보이지 않았다. 가정이지만 만약 우리 군이 북한과 상대해서 조그만 전과라도 올렸더라면 아마도 군은 “국방장관께서 강조해오신 전투형 부대 육성 지휘방침 덕분”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했을 것이다. 그는 ‘관운’이 좋은 사람일지는 몰라도 진정한 군 지휘관으로서의 ‘용기’는 없었다.
김 실장이 국가안보실장이 된 뒤 곧바로 서부전선 부대를 방문해 “적 도발 시 가차없이 응징해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강한 전투력을 갖추라”고 말한 것은 우습고도 씁쓸하다. 격동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 속에서 안보·외교와 남북관계 관리를 총책임진 사람이 강성 일변도의 발언을 하는 것도 부적절해 보이지만, 임 병장 체포 과정에서 보인 군의 오합지졸 모습을 떠올리면 국민의 얼굴이 화끈거리는 발언이다.
이 와중에 한민구 신임 국방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군 내부에 친북·종북 성향의 간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군의 총사령탑이라면 오히려 “나는 우리 군 간부들의 애국심과 충성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정상이다. 정부여당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 무조건 종북·친북 간부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군인답지 못한, 하늘에 대고 스스로 침을 뱉는 행동이다.
신임 국방장관이 취임하면서 군은 전군 지휘관 회의며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이며 하는 행사로 갑자기 바빠졌다. 군의 혁신, 특단의 쇄신 등의 말들도 무성하다. 하지만 말만으로 그런 목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부하 간부들의 애국심을 의심하고, 일이 잘못되면 부하한테 책임을 돌리는 장수 밑에서 강한 군대는 결코 나오지 않는 법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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