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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침 뱉기 경쟁

등록 2014-07-20 18:33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친한 친구가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뒤 정치를 해보겠다고 나서면 당신은 뭐라고 말해주겠는가? 대부분 일단 말리고 볼 것이다. 정치판이라는 게 얼마나 험하고 더럽고 치사한 진흙탕인가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경고를 할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유능하더라도 평범하고, 용감하더라도 양식 있는 사람은 정치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보통사람들이 정치인을 형편없는 인간으로 보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정치인이 가진 힘은 높게 평가한다. 특히 청탁을 할 일이 있을 땐 그들을 숭상하기까지 한다. 잘나가는 정치인을 지인으로 둔 사람은 대화 때마다 그 사실을 밝히면서 이른바 ‘후광 반사효과’를 누리려고 든다. 다만 정치는 나나 내가 아끼는 사람이 할 짓은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면 누가 정치판에 뛰어드는가? 그 어떤 고난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을 만큼 인정 욕망이 강하거나 그 어떤 이념이나 비전에 사로잡혀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사람들이다. 주류 정치판을 놓고 보자면 전자의 유형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필수 덕목은 비판과 비난에 초연한 ‘맷집’이다. 뻔뻔함은 기본이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마저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정치혐오는 누구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될까? 정치인이다. 대중이 정치에 침을 뱉고 돌아설수록 잠재적 경쟁자의 수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 이치를 깨달은 정치인들은 정치가 혐오의 대상이 되게끔 애를 쓴다. 꼭 의도적으로 그러는 건 아닐망정, 대중의 혐오를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그건 의도보다 무서운 무의식의 세계에 각인돼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장난 중에 ‘먹을 것에 침 뱉기’가 있다. 여러 명이 있는 자리에서 맛있는 과자나 음식을 독식하고 싶을 때 미리 침을 퉤퉤 뱉어놓음으로써 다른 아이들이 손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잠재적 경쟁자들에게 “이런데도 정치판에 뛰어들 거야?”라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속화하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대해 분노하거나 억울하다고 느끼는 정치인들이 있다면, 혹 자신이 이른바 ‘선거주의’에 중독돼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화되기 이전이나 과도기적 상황에서 선거에서의 승리는 절대적으로 중요했겠지만, 오늘날에도 과연 그런가? 선거 승리나 자신들의 입지 강화를 위해선 대중의 혐오를 유발하는 방식도 불사해야 하는가?

최근 일어난 일련의 ‘공천 파동’이 대표적인 사례지만, 한국 정치의 모든 파행은 ‘뿌리 없는 정당’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밑으로부터’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정치혐오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밑’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를 직업 또는 부업 삼아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는 ‘밑’이 개혁적이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가 정녕 정치개혁을 원한다면 선택을 해야 한다. ‘밑’이 없는 걸 전제로 한 개혁을 할 것인가, 아니면 ‘밑’을 만드는 데에 모든 노력을 집중할 것인가? 전자의 선택을 하겠다면 새로운 민주주의 이론이 필요하다. 만약 ‘밑’을 만드는 선택을 하겠다면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씨가 제안한 바 있는 ‘서비스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정당이 대중의 일상으로 파고들어 무료 법률 자문에서부터 인문학 강좌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정당을 친근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주요 서비스 인력은 정치 지망생들이다. 이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별로 유권자들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경쟁적으로 벌이고, 정당은 그걸 공천의 주요 근거로 삼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니 그렇게 해서 ‘밑’이 튼튼해진다면 공천은 저절로 밑의 역량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정치인들이 잠재적 경쟁자의 수를 폭증시킬 위험 때문에 이 방식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내내 그들이 연출하는 ‘먹을 것에 침 뱉기’를 구경하면서 따라서 침을 뱉는 ‘침 뱉기 경쟁’만 벌이게 될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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