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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월호 잊지 않기 위해 정치가 할 일은

등록 2014-07-23 20:24수정 2014-07-24 08:44

[성한용 선임기자의 현장 칼럼 ]
“여기 뭐하러 오셨습니까. 내일모레 100일인데 힘없는 야당이 이렇게 저렇게 하고 있지만 잘 안된다고 겨우 그 말 하러 오셨습니까. 우리가 뭐라고 대답하기를 기대하십니까. ‘고맙다. 야당 의원들 그동안 수고했으니 이제 손떼라’고 할까요. 어떻게 이렇게 정치를 하십니까.”

실종자 가족의 질책에 국회의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22일 밤 9시 전남 진도체육관에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현미·우원식·부좌현·김현·김광진 의원과 실종자 가족들이 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의원 보좌진과 기자들이 주위를 에워쌌다. 항의는 청문회의 증인 채택이 여당의 반대로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김현미 의원의 설명 뒤에 터져 나왔다.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대전에 있는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와 광주고검에 설치된 수사본부에서 현장조사를 한 뒤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자리였다. 박민수·최민희·민홍철·정진후 의원은 현장조사만 마치고 돌아갔다.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새누리당 의원들은 아예 현장조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저렇다 설명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뚫겠다는 것인지 얘기해 주셔야죠. 어려우면 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질타가 이어지자 실종자 가족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배의철 변호사가 나섰다.

“여당과 타협하지 말고 싸워달라는 겁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가족들의 절실함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의원들이 겨우 입을 떼기 시작했다. 우원식 의원은 “국정조사를 해보니 조사권만 가지고는 진실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특별법에서 수사권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믿음을 가져 달라”고 했다. 그는 심지어 “야당 안에 문제가 생기면 세월호당을 따로 만들 생각”이라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가족들이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야당은 야당다워야 한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분위기가 풀리자 의원들과 가족들은 실종자 수색, 희생자 가족과 의원의 단식, 유병언 회장 사체 발견 얘기를 이어갔다.

현재 10명인 세월호 실종자의 가족들은 수색이 최우선 관심사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에도 힘을 보태기로 의견을 모았다. 24일 오후 팽목항에 천막을 치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연좌농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가족들은 야당 의원들도 연좌농성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의 대화는 밤 10시께 끝났다. 수염이 길게 자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체육관을 떠나는 의원들을 배웅했다.

세월호 국정조사특위는 6월2일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현장조사와 기관보고를 했다. 8월4일부터 8일까지 청문회를 한 뒤 국정조사 보고서를 채택하고 8월30일 활동을 종료한다. 세월호 특별법은 국정조사와 별도로 여야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진상조사 기구에 수사권을 부여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100일을 맞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원들의 소회가 궁금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의원들에게 물었다.

김현미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들은 조사 자체를 아예 하지 않으려고 한다. 정말 힘들다. 이 정도 대참사 앞에서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면 안 되는데 현 정부는 자꾸 보혁대결로 몰아서 피로감을 유발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는 “순진한 가족들이 정치의 한가운데로 끌려 들어와 버렸다. 상처를 입고 좌절하고 있다. 극단적인 행동을 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우원식 의원은 좀더 근본적인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회 변혁을 위해 30~40년간 노력했다. 정치도 그래서 한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통해 그런 노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우리 사회의 결함이 총체적인 데 비해 변혁 운동은 너무나 단편적이었다. 나에게 변혁 운동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됐다.”

그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과 원인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아니면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고 국민적 동력을 끌어내는 역량도 발휘할 수 없다. 반드시 수사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이 세월호 특별법, 특히 수사권에 집착하는 것은 이처럼 희생자 가족들의 절박감, 민주화 운동으로 시작한 자신들의 인생관 및 가치관이 이번 사안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선거 유불리라는 정치적 이해 차원을 넘어선다는 얘기다. 의원들이 세월호 행사에 대거 참여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23일 아침 경기도 안산분향소에서 출발한 특별법 제정 촉구 100리 행진에는 박영선 원내대표와 문재인 의원 등 15명이 참가했다. 저녁에 광명시민체육관에는 더 많은 의원들이 모였다. 이들은 24일 국회에서 단식중인 희생자 가족 및 의원들과 합류한 뒤 서울광장 문화제에 참석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세월호의 아픔을 선거에 악용하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더 훼손하고 유가족을 더 슬프게 하는 것”이라고 야당을 비판했다.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의원들도 ‘세월호 청문회가 정쟁의 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야당의 위원장 사퇴 요구 등을 비난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은 결국 정치가 풀어야 할 몫이다. 그런데 정치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집권세력이 너무 소극적인 탓이다. 어쩌려는 것일까. 큰일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길 위에서 [21의생각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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