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빈 논설위원
새 경제팀의 세제개편안이 다음주 중에 나온다. 뼈대는 정부가 24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했다. 여기에 살을 붙여 완성된 구상이 나올 텐데, 벌써부터 논란이 뜨겁다. 개편 목적에 비추어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까닭이다. 소리는 요란한데 알고 보면 속이 빈 깡통일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을 ‘가계소득 증대 세제 3종 세트’라고 이름 붙였다. ‘근로소득 증대 세제’와 ‘배당소득 증대 세제’는 당근, ‘기업소득 환류 세제’는 채찍에 비유할 수 있다. 세제 3종 세트의 취지는 기업의 여윳돈이 가계로 흘러가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목표는 가계소득의 증가를 통한 소비 활성화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볼수록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세제개편의 취지나 기본 방향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놀랍게도 최경환 새 경제부총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단행한 감세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으로 세제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23일 언론사 논설·해설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설명한 내용은 이렇다. “이명박 정부 때 법인세를 3%포인트 인하해서 기업의 투자 증가를 기대했는데 투자는 부진하고 사내유보금만 쌓였다. 이번 세제개편안은 기업 성과가 임금과 배당, 투자 등의 형태로 가계에 흘러가지 않으면 법인세를 깎아준 혜택을 되돌려받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최 부총리가 뜻대로 실행할지 의문이다. 기업소득 환류세부터 막연하다. 이 세제는 앞으로 기업의 세후 당기순이익에서 임금·배당·투자를 늘리는 데 쓰는 돈이 일정 비율을 밑돌면 세금을 물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세 대상과 기준 등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실제 기업의 추가 부담이 거의 없도록 설계할 수 있다. 게다가 본격 과세 시기는 박근혜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이다. 과세 근거도 법률이 아니라 정부가 언제든 바꿀 수 있도록 시행령과 시행세칙에 담을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유동적이며 기대효과도 불투명하다.
반면에 당장 내년부터 시행할 근로소득 증대 세제와 배당소득 증대 세제는 파급 영향이 확실히 보인다. 문제는 그 영향이 국민경제 전체로 확산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근로소득 증대 세제와 배당소득 증대 세제는 각각 기업의 임금과 배당 증가를 유인하는 장치다. 직원 평균임금이 증가하는 기업에게는 세액공제를, 배당 증가분은 주주에게 낮은 세율로 분리과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실상 또다른 ‘부자 감세’나 다름없다. 고액 임금소득자와 ‘고가우량주’를 보유할 만큼 여유가 있는 금융자산가들에게 조세감면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소비 진작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5분위에서 상위 20%에 해당하는 가계는 가처분소득에서 소비지출의 비중을 뜻하는 평균소비성향이 올해 1분기 59.9%에 그치며 그것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1%포인트 더 떨어졌다.
우리 경제는 성장을 하면서도 기업과 가계, 부자와 가난한 계층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심화는 다시 성장잠재력의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흐름을 개선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소득에 따른 세율의 누진구조를 강화하고, 무엇보다 최 부총리조차 실패로 인정한 이명박 정부 때의 감세조처를 원상회복시키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새 경제팀은 지도가 없는 길에 나섰다”고 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로 방향을 잡았다는 얘기다. 비단길일 수도 있고 험난한 가시밭길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원칙과 정도를 지키면서 이정표를 따라 똑바로 가는 것이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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