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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통령에 대한 관음증을 부추기는 청와대

등록 2014-08-06 20:40수정 2014-08-07 16:14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당일인 4월16일 오후 5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보고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첫 서면보고를 받은 뒤 이때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행적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당일인 4월16일 오후 5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보고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첫 서면보고를 받은 뒤 이때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행적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김종구 칼럼]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골프를 잘 친 대통령으로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꼽힌다. 하지만 케네디는 골프 치는 사실을 쉬쉬했다. 골프광이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향해 대선 기간 동안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보다 자신의 골프 스코어를 줄이는 데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던 그는 대통령이 된 뒤 국민의 눈을 피하는 ‘몰래 골퍼’가 됐다. “케네디가 아름다운 젊은 여성과 만나고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한 시간 중 상당 부분은 사실은 골프를 치고 있었다.”(돈 반 나타 주니어의 <백악관에서 그린까지>)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테러 공격을 받고 있던 순간 조지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주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중이었다. 그리고 그는 워싱턴으로 바로 복귀하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나중에 9·11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 부시 대통령의 행적과 동선에서는 애초 알려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 많이 발견됐다. “초등학교 대기실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다는 보도를 봤다”는 주장과 달리 당시 대기실의 텔레비전에는 전원조차 연결돼 있지 않았다는 식이다.

케네디가 백악관에서 가끔 자취를 감추는 것이 딴 여성과 밀회를 즐기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골프를 치기 위해서인지를 미국 국민이 꼭 알아야 할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대중의 호기심이요 일종의 관음증이다. 하지만 9·11 사태 당시 부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궁금증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거짓말을 포함해 모든 사실을 꼼꼼히 조사해 밝히고 기록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가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는 자명하다. 이런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어떻게 보고를 받고 어떻게 판단을 하고 어떤 조처를 내렸는지를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히 ‘부시형 궁금증’이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 부속실장의 국정조사 증인 채택을 거부하며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제”라고 말했다는데, 결론은 다르지만 국가안보라는 말은 맞다. 국가에 중대한 변고가 일어났는데 대통령의 소재를 몰라 대면보고를 못 했다면 국가안보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행적 문제를 스스로 ‘케네디형 스캔들’로 만들어버렸다. 새누리당 역시 “대통령의 사생활”이니 뭐니 하는 말로 대통령을 ‘관음증’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했다.

급기야 일본의 <산케이 신문>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에서 박 대통령의 당시 행적을 둘러싸고 증권가 정보지 등에 나도는 루머를 활자화했다. 정아무개씨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이웃나라 국가원수에 대한 미확인 소문을 기사화한 무례함과 방자함이 하늘을 찌른다. 문제는 이런 국제적 스캔들을 자초한 것이 청와대라는 점이다. <한겨레> 등 국내 언론사들한테는 득달같이 명예훼손 소송을 낸 청와대가 대통령 얼굴에 먹칠을 한 산케이 보도에 앞으로 어떻게 대응을 할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지나놓고 보면 “인력과 장비를 최대한 활용해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만큼 허망하고 공허한 것도 없었다. 그것은 하나 마나 한 말이었고, 실제로 현장에서 하나도 지켜지지 않은 지시였다. 대통령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지시를 내렸는지조차 불분명하다.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이런 모든 것을 복기해서 국가적 재난사태 발생시 청와대의 적정한 행동수칙을 만들자는 게 대통령의 당일 행적을 밝히려는 본뜻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 버렸다.

케네디가 골프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은 그의 잦은 실종을 두고 각종 잡음이 일자 피어 샐린저 백악관 대변인이 나서서 “그게 아니고, 사실은 대통령께서 골프 코스에 계셨다”고 실토하면서였다. 그것이 그나마 더 심각한 추문을 막는 길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제 청와대도 산케이 보도 등이 사실이 아니라면 “정아무개씨를 만난 게 아니고 사실은…”이라고 해명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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