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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살아 돌아온 아들에게 / 김흥숙

등록 2014-08-15 18:11

김흥숙 시인
김흥숙 시인
요즘 자꾸 군복 차림 네 모습이 떠올라. 지오피 동료들에게 총을 쏜 임 병장, 스스로 생을 마감한 신 이병, 모두 네가 복무했던 육군 22사단의 병사들이지. 28사단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다 숨진 윤 일병도 남 같지 않아. 윤 일병처럼 의무대에서 선임들에게 시달린 너, 제대하고 한참 후에야 말했지. “모두 다 쏴 죽이고 싶었어요. 혼자 죽어버릴까… 바위로 발등을 찍어 병원에 실려 갈까… 수도 없이 생각했어요.”

폭행당해 쓰러진 사람에게 수액을 주사해 회복시킨 후 또 폭행했다니, 젊은이들을 이렇게 잔인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일벌백계를 외치는 사람들은 이들이 타고난 악당인 듯 말하며, 폭행을 주도한 군인들도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못 본 체하지.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후임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고 제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도 못하면서.

국방부 장관이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 수치스럽다고 했대. 그인 정말 이 나라가 ‘문명사회’가 아니라는 걸 몰랐을까? 자신은 이 끔찍한 사건을 언론보도를 보고 알고 자신의 전임자는 이 사건을 대충 넘기고도 청와대에 들어가 국가안보실장이 되었는데? 군인들이 이렇게 죽어가고 전체 병사의 20퍼센트가 ‘관심병사’여도 퇴역군인들과 군인을 위해 일한다는 재향군인회 등 군인단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침묵하는데?

집권 여당 대표는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이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규정하고, 윤 일병에 대한 가혹행위가 ‘일제 때 고문 만행’을 연상시킨다고 했지. 대학 재학 중 입대하여 이등병으로 전역했다는 그이, 부친이 친일파였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그이가 서둘러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나라의 문제는 2014년 달력을 걸고 1960년대 식으로 사는 거야. 기득권을 빼앗기기 싫은 사람들이 앞장서 나라를 뒷걸음질치게 하지.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의 시계는 1960년대에 멈춰 있으니, 21세기의 아들들이 물려받은 건 20세기 아버지들의 총만이 아니라, 아무리 부당한 일도 선임자가 하라면 해야 하는 풍토, 자유와 인권의 ‘저당’, 의문사의 가능성이지.

윤 일병이든 윤 일병 폭행을 주도했던 이 병장이든 너든 나든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아. 공통점이 바다라면 다른 점은 물거품. 작은 차이를 만드는 건 유전자와 상황이겠지만, 선하지 않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도 사랑과 평화만 먹고 자라면 악한이 되지 않지. 괴롭힘을 당하던 이등병에서 ‘살인범’이 된 이 병장, 그가 나이 들어 입대하는 대신 징집 대상 연령을 벗어날 때까지 유학생활을 했어도 그렇게 되었을까?

군대를 개혁해야 한다고 떠들지만 정부와 여당이 세월호 사건을 대하는 걸 보면 개혁은커녕 개선도 불가능할 것 같아. 휴대폰 사용을 허용하면 폭력이 없어질 거라고? 군대에만 공급되는 이상한 식품들처럼 특정 단체나 회사가 군인용 휴대폰을 공급해 큰돈을 벌지 않을까? 첨단무기의 시대에 맞게 지상군의 수를 현격히 줄이고 무기를 현대화하고, 힘없는 집 아들들만 징집하는 듯한 징병제를 폐지하고 일본, 미국처럼 모병제로 바꾸면 나아질까?

‘군대는 세상의 부조리와 야만에 대해 미리 백신을 맞는 곳’이고 ‘백신이 너무 독하면 맞고 죽기도 한다’던 너, 군대 꿈을 꾼 날이면 여전히 진땀을 흘리는 너, 상처투성이로 살아 돌아온 너와 네 친구들이 할 일은 무엇일까? 군대가 힘없는 젊은이들이 평생 경험할 ‘을’의 삶을 미리 맛보는 곳 이상이 되게 하려면,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김흥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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