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 제정 결단과 가족대책위원회 면담을 요구하며 닷새째 청와대 들머리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가족대책위 가족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농성장 맞은편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지지 기자회견을 열자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김종구 칼럼]
훗날 밝혀진 바지만 9·11 사태 발생 초기 조지 부시 대통령의 행적은 애초 발표된 것과는 많이 달랐다. 자신이 사건 당일 곧바로 정부의 비상대응 계획을 이행했다는 설명과 달리 비상령은 연방수사국(FBI)이 백악관의 지시 없이 ‘정부 합동 국내테러 작전계획 개념(콘 플랜)’에 의거해 발동했다. 부시 대통령이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하던 중 사태 발발을 보고받고 “몇 초 지나지 않아 학교 교실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거짓말이었고 최소한 7분 이상 머물렀던 사실도 밝혀졌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흠잡을 데 없이 행동한 것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에 상당 부분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감춘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 행적을 둘러싼 논란도 비슷하다. 청와대가 “대통령은 분명히 경내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관저에 있었다는 뜻으로 짐작된다. 청와대 쪽은 “관저에도 집무실이 있다”며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관저는 대통령이 쉬는 공간이라는 성격이 강하며 국가 비상사태에서 오랫동안 머물 장소는 못 된다. 세월호 침몰 정도의 국가적 위난 사태가 일어났다면 대통령이 곧바로 ‘정위치’하는 게 정상이다. 9·11 당시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곧바로 돌아오지 않고 에어포스원의 기수를 돌린 경위를 놓고 나중까지 설왕설래가 오간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청와대가 굳이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쉬쉬하는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아이들이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한가하게 ○○이나 하고 있었다니’ 하는 비판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 길은 없다. 정아무개씨를 만난 것이 아닌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일각의 관측처럼 대통령의 건강이나 미용과 관련된 무엇이었을까? 어쨌든 뭔가 말 못할 곡절이 있기는 있는 모양인데, 문제는 7시간 미스터리가 당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현실이다.
사실 특별법에 따라 진행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초점은 결국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초기 대응 부실 문제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 밖의 것들은 검찰 수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밝혀낼 수 있고 이미 얼추 드러난 상태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 초기 대응 문제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7시간 미스터리’와 맞닥뜨리게 된다. 청와대로서는 그 대목이 난처할 수밖에 없다. 여야 간 특별법 협상이 한창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야당이 7시간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약속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을 터뜨린 것도 이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미국의 9·11진상조사위원회는 부시 대통령의 행적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광범위한 주변 조사는 물론 대통령 본인도 직접 조사했다. 백악관은 애초 조사 시간을 1시간으로 정하고 조사위원도 위원장과 부위원장 두 사람으로 국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부시 대통령은 결국 백악관 집무실에서 조사위원회 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10분이나 조사를 받았다. 증인 선서가 면제된 것이 그나마 다른 증인들과 달랐던 점이다.
미국의 9·11진상조사위가 부시 대통령의 행적을 꼬치꼬치 조사한 것은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을까? 조사를 받은 당사자야 물론 기분 나쁘고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 스스로도 이를 불순한 정치 공세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대통령의 행적이 그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대통령의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물론 없었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만들어지는 우리 진상조사위가 과연 그 정도로 대통령을 조사할 수 있을까? ‘7시간 미스터리’ 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태도로 볼 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기소권은 그만두고 수사권도 없는 진상조사위가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진상조사위에 대한 수사권 부여, 특별검사 임명 절차 등을 둘러싼 힘겨루기의 이면에는 이런 뇌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7시간 미스터리는 영원한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남을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진실은 언젠가는 모습을 드러내게 돼 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단지 ‘아이들이 바다에 빠져 죽고 있는데 한가하게…’ 정도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유족들의 피맺힌 절규를 한사코 외면했구나’라는 비판까지 더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진실은 엄중하고 역사의 평가는 매섭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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