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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담뱃값 인상 유감 / 박순빈

등록 2014-09-11 18:33

박순빈 논설위원
박순빈 논설위원
정부가 내년 1월부터 담뱃값을 2000원 올리겠다고 11일 발표했다. 정부 인상안이 관철되면 현재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은 4500원이 된다. 인상률이 무려 80%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담배로 인한 심각한 폐해를 줄이기 위한 종합 금연대책’으로 담뱃값 인상을 추진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왠지 꼼수 냄새가 풀풀 난다. 국민 건강의 증진을 빙자해 담배 피우는 1000만 국민을 겨냥한 증세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안은 사실 담뱃세 올리기다. 담배 한 갑을 사면 현재 갑당 1550원의 각종 세금과 부과금이 따라붙는다. 이를 3550원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담배 한 갑 소비에 따른 세금 부담률이 62%에서 79%로 높아진다. 지난해 정부가 담배 판매로 거둬들인 세수는 약 7조원이다. 담뱃세가 인상될 경우 소비량은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다. 그렇더라도 세수 증대 효과가 적게는 2조8000억원, 많게는 4조원대로 추정된다. 가격 인상 뒤에도 담배를 뻑뻑 피우는 애연가는 나라 곳간을 채운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담배 피우는 국민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흡연 행위를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삼는다. 흡연자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의 건강을 해치며 사회적 비용을 키운다고 강조한다.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생산이나 소비 행위에 부과되는 세금을 죄악세라고 한다. 정부가 사회적 죄악을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면 해당 납세자는 저항하기가 힘들다. 끽소리 못하고 털이 뽑히는 거위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징벌적 세금이라도 과세원칙에 어긋나서는 곤란하다. 해당 납세자의 부담 능력과 다른 납세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하고, 거둬들인 세금을 목적에 맞게 제대로 관리할 것임을 사전에 보장해야 한다. 이번 담뱃세 인상안에 이런 원칙이 잘 담겨 있는지 의문이다.

당장 공평과세의 원칙에 맞는지 따져보자. 담뱃세와 같은 죄악세는 세계 어디서나 대부분 재정이 어려울 때 건드린다. 상대적으로 조세 저항이 덜하다는 점을 국가가 이용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이번 담뱃세 인상 추진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 때의 감세 조처로 재정수지는 크게 나빠졌다. 앞으로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 그러자 정부가 만만한 흡연자들의 주머니부터 털어보자는 것 아닌가? 결국 부자와 대기업에 준 감세 혜택으로 생긴 나라 곳간의 구멍을 흡연자들이 메우는 꼴이 아닌가?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위한다면 흡연자의 부담만 가중시킬 게 아니라 ‘당근’을 제시하는 방법도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빈곤퇴치연구소가 몇 해 전 필리핀 민다나오섬 주민들을 대상으로 ‘흡연감소 및 금연약속 운동’(CARES)을 펼친 적이 있다. 연구소는 현지 은행과 손을 잡고 흡연자만을 상대로 한 독특한 저축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금연 희망자들에게 최소 1달러를 넣고 계좌를 개설토록 한 다음 6개월 동안 평소 지출해온 담뱃값만큼 이 계좌에 넣도록 했다. 6개월 뒤 소변 검사를 해서 금연 성공을 확인받은 사람은 애초 입금액에다 이자까지 더해 돈을 돌려받았다.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계좌는 폐쇄되고 잔고는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금연 성공률은 53%로 약물을 이용한 금연프로그램보다 성공률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이런 게 흡연자를 국민 대접 해주면서 정책 목표도 실현하는 좋은 방법이다. 때로는 부드러운 권유가 징벌적 의무를 지우는 것보다 세상을 더 쉽게 바꿀 수 있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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