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가
‘가수 권리세’를 기억하게 된 건 우연히 본 오락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단시간에 다이빙 기술을 익혀 다이빙을 하고 점수를 매기는 프로그램인데 그녀는 전문가도 놀랄 만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가능성을 아까워한 전문가가 다이빙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자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제 꿈은 가수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다이빙대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려웠을 것이다. 다이빙대의 높이에 따라, 기술의 난이도에 따라 시청자들의 시선이 쏠렸으니 얼굴을 알려야 하는 신인 가수인 그녀로서는 아마 높은 수위의 다이빙을 선택했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에서 그녀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을지 짐작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없지 않겠지만 그녀라면 잘 이겨내리라는 막연한 신뢰까지 품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과 꿈, 미래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가 속한 걸그룹의 이름도, 같이 숨진 멤버 은비양의 꿈이 가요 순위에서 1위를 하는 것이었다는 것도 이번 사고로 알게 되었다. 이제 데뷔 1년차인 신인에게 가요 순위에서의 1위는 요원한 일이었을 것이다. 팬들이 앞장서서 은비양의 꿈을 이루어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들의 노래가 순위 차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은비의 꿈’이 이루어졌다.
‘은비의 꿈’에서 자연스럽게 ‘보미의 꿈’이 떠올랐다.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보미양의 꿈은 가수였다. 가수 김장훈씨가 보미양과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를 함께 불렀다. 은비의 꿈도 보미의 꿈도 그렇게 뒤늦게 이루어졌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 잠에서 깨어 세월호 희생자인 아이들의 꿈에 대해 생각했다. 젊은 두 가수의 때 이른 죽음과 꿈이 자연스럽게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또다시 억장이 무너졌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만난 적은 없지만 대한민국 고등학교 2학년의 일상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잠을 줄여 대학 입시 준비에 매달리면서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은 일년 반 뒤로 미루어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노력과 꿈,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무한한 미래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인터넷 신문을 뒤적여서 아이들의 꿈을 다시 찾아보았다. 얼굴 생김새만큼 꿈도 다양했다. 수화통역사에서부터 한의사, 요리사, 사제…. 가슴이 먹먹한데 그만 한 대목에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평범한 가장이 꿈이었던 건우군 때문이었다. 능청스러운 남학생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꿈이라면 원대해야지 그게 뭐냐? 엄마 아빠로부터 지청구를 들었을 법하다.
고등학교 2학년 한 남학생의 장난스러운 꿈도 이제는 꿈도 꿀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다. 평범한 가장이라는 꿈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꿈인지 우리는 잘 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김영오씨의 꿈도 유민, 유나의 아빠였을 것이다. 어쩌면 어느 시기 그 또한 장난스럽게 평범한 가장이 꿈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평범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평범이 제일이라고 깨닫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성실히 일하고 번 돈으로 두 딸의 꿈을 지원해줄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이들과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그의 꿈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지금 그를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의 꿈은 단 하나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왜 죽어갔는지 알고 싶은 것뿐이다. 당분간 나의 꿈도 그 하나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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