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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대통령 무책임제’보다 내각제가 낫다

등록 2014-09-22 18:24수정 2014-09-23 10:04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개헌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특히 권력 구조에 관해서는 확실한 ‘반내각제론자’였다. 대통령 중심제의 오랜 전통을 버리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고, 우리나라처럼 본질적 개혁이 필요한 나라에서는 그래도 대통령 한 사람 바꾸는 것이 가장 확실한 개혁 방안이라는 신념도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의 정치 지형상 내각제가 시행되면 보수 정당이 세세연년 집권하게 되리라는 판단이 내각제를 꺼린 더 솔직한 이유였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대통령제를 계속 유지하느니 차라리 위험 부담을 안더라도 내각제가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목도한 대통령제의 폐해가 너무 끔찍한 탓이다. 흔히들 대통령 중심제의 장점은 효율적이고 일사불란한 국정운영 능력이라고 말하는데, 정작 나타난 모습은 정반대다. 무능과 무책임, 혼란과 갈팡질팡은 하늘을 찌르고, 일사불란함은 오직 정부와 대통령의 무능·무책임을 가리려는 데서만 발휘될 뿐이다.

대통령 중심제의 폐해가 이처럼 극심하게 나타난 것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품성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런 폐해는 1인 권력 체계의 불가피한 병통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분권형 대통령제든 순수 의원내각제든 이제는 권력 구조를 개편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정치권에서도 개헌 논의가 솔솔 불거져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소속 조해진·김영우 의원 등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분권형 개헌을 특위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고,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도 세월호 특별법 협상 타결이 끝나고 나면 개헌을 본격 논의하자는 말이 나온다.

개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제나 거론되는 것은 ‘국민적 공감대’다. 정략적 목적을 벗어나 공동체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백번 지당한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이 말은 늘 개헌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데 활용돼 왔다. 국민적 공감대처럼 실체를 붙잡기 힘든 추상적인 말도 없다. 여론조사를 해도 질문 내용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란 말은 결국 개헌 논의를 일단 뒤로 미뤄놓자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논거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경제 살리기도 바쁜데’ 따위의 주장이 더해지면 국민적 공감대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게 돼 있다.

대선 과정에서 ‘임기 중 개헌’을 철석같이 약속했던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 불가 이유로 내세운 명분도 “경제 살리기 불씨를 살려야 할 시점에서 개헌은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지금처럼 국민적 공감대가 무르익을 분위기가 마련된 적도 별로 없었던 듯하다. 현 정권은 개헌 논의를 회피한 명분과는 달리 그동안 경제 살리기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경제는커녕 나라가 이처럼 모든 면에서 곤두박질친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의 오만과 전횡은 하늘을 찌르고, 의회민주주의와 사법부의 독립성은 날로 시들어 가고 있다. 현실을 바꿀 필요조건은 충분히 숙성된 셈이다.

결국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설득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그 임무는 일차적으로 정치권이 맡을 수밖에 없다. 다만 개헌 논의 접근 방식은 세심하고도 치밀해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원 포인트 개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손대려다 결국 논쟁의 늪에 빠져버리는 우를 범해서도 곤란하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이유다.

차기를 꿈꾸는 대선 주자들 중에도 더러 개헌 반대론자가 있겠지만 결국 개헌의 최대 걸림돌은 박 대통령이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순전히 정치권의 몫이다. 선거가 없는 2015년에 개헌을 하든가, 아니면 다시는 영원히 개헌 이야기를 꺼내지 말든가, 이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시점이 됐다. 언제까지 개헌의 쳇바퀴 속에서 달리기를 계속할 건가.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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