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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다 함께 안식년 / 권보드래

등록 2014-10-03 18:38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7년이 지나면 인간 전신의 세포가 최후의 하나까지 교체된다고 한다. 7년 동안 나는 이 육친들과 관계없는 식사를 하리라.” 오래전 이상은 그렇게 썼다. 매일 조금씩 세포가 죽고 태어나는 것이 7년이면 한 순배 찬다고 생각하던 때의 일이다. 이상은 7년 동안 가족과 아무것도 나누지 않을 테니 새 세포들은 제발 자유롭기를 빈다. 인간은 7년마다 갱생한다고, 그 시절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믿었단다.

왜 하필 7년이었을까. 유대교-기독교의 시간관이 전해지기라도 한 건가. 그러고 보면 대학에서 채용하고 있는 안식년의 리듬도 보통 7년이다. 6년 일하면 1년 쉰다. 다행히 지금 일하는 대학에서는 그 리듬을 절반씩으로 조절할 수 있어서 작년에 처음으로 한 학기를 쉬었다. 굳이 나라 밖으로 떠나 전화 통화마저 드문드문한 반년을 만끽하고, 모처럼 제대로 엄마 노릇 해보고, 낯선 도시의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낯선 책을 기웃거리다 왔다.

요즘은 연구년이라 불리는 제도지만 안식년이란 말이 더 좋다. “실컷 쉬세요. 푹 쉬어야 일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죠. 연구년 아니라 안식년이라니까요.” 돌이켜 보면 한 20년은 헉헉 달린 기억뿐이다. 반년 동안 천천히 걸으면서 참 좋았다. 낯선 땅에 자리 잡느라 씨름하는 과정마저 싫지 않았다. 마당에 부추와 깻잎을 키우고 부엌에서 김치를 담그면서 한국에서라면 숙제처럼 버거웠던 그런 일을 즐겨보기도 했다. 자주 풀밭에 누워 책을 읽었다. 밤이면 별이 총총했다.

참 좋았지만 많이 미안했다. 안식년 제도가 도입된 지 20여년인데 없애겠다는 으름장이 대학에서도 스멀거리는 판이다. 다른 대학 교수를 만날 때면 안식년이라니, 학교마다 사정이 다 같은 줄 아느냐는 푸념을 자주 들었다. 안식년 제도가 정착한 곳은 그나마 대학과 종교 조직뿐, 유사 안식년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직종도 기자나 고위직 공무원이 고작이고, 대부분은 안식년은커녕 안식일마저 쉽지 않은 과중한 노동 속에서 산다. 소규모 자영업자라면 1년 365일, 1일 15시간 노동도 드물지 않은 것 같다.

기독교의 성서에는 매 7년째 되는 해를 안식년으로 정하라는 가르침이 있다. 모세가 전한 율법이란다. 그에 따르면 6년 동안 농사를 지은 후 7년째 되는 해에는 땅을 쉬게 해야 한다. 저절로 맺힌 열매도 거두면 안 된다. 내 밭 포도나무에서 열린 과실이라도 그해에는 모두의 것이다. 하나가 더 있다. 빚을 탕감하고 노예를 해방해 주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노예가 해방을 원할 경우 넉넉히 살림살이를 들려 보내라고 돼 있다.

엉뚱한 권고다. ‘너희 동족’일 경우라며 제한을 달기는 했지만 내 돈 주고 사온 내 노예를 놓아주어야 한다니. 내 땅의 소출을 내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한다니. 성서의 기록자는 7년에 한번씩 사적 경계를 없애고 삶의 공동성을 회복하라고 명령한다. 이집트 탈출 전에는 모두 노예가 아니었느냐면서 빈부가 없었던 그 예전을 돌아보라고 권한다. 쉬면서 그렇게 해 보라고 말을 건네온다.

다들 7일에 하루 쉬듯 7년에 한해 쉰다면 세상은 얼마나 바뀔까. 오래 제대로 쉬기 위해선 공동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내 일을 누군가 대신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돌아올 자리가 있어야 하고, 경제적 지원까지 있어야 한다. 그런 지원이 장기적으로 더 큰 효율을 낳으리라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 꿈같은 얘기지만 그런 날을 떠올려 본다. 안식년 떠나기 직전 벗들을 만나면 으레 이렇게 눙치곤 했다. “지금은 제가 대표로 다녀오겠습니다!”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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