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논설위원
‘스데로트 극장’을 기억하는가. 지난여름 팔레스타인 땅에 퍼부어댄 폭탄을 불꽃놀이처럼 즐기며 맥주를 마셔댔던 이스라엘의 언덕 말이다. 전세계가 유대인들의 인종적 잔혹성에 경악했지만, 사실 그들을 악마로 만든 건 ‘아이언 돔’이다. 팔레스타인이 아무리 까삼 로켓을 쏴봐야 모조리 다 요격해주니, 걱정 없이 질펀하게 살육을 즐긴 것이다. 그러니 아이언 돔은 결코 방어용이 아니다. 아무리 화력이 앞서더라도 이스라엘 주민들이 다칠 위험성이 있다면 그토록 무자비하게 쏘아대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이언 돔은 두려움을 제거해줬다. 시작은 방어용이었겠으나 그 끝은 지독한 공격용으로 바뀐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에 들여오려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수비용이라고 우기지만 중국으로서는 섬뜩한 무기다. 요즘 심상치 않은 홍콩이 독립하겠다고 총을 들고 중국이 무력으로 진압에 나섰다고 치자. 오산이나 오키나와, 괌의 미 공군이 출격할 수 있을까. 미국이 개입하면 중국도 이곳 기지들을 향해 미사일을 날릴 것이다. 서로 무서우니 조심하게 되고 전쟁 억지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사드가 중국 미사일을 한낱 폭죽으로 만들어버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국은 맘 푹 놓고 전투기를 띄울 수 있을 테고, 중국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바로 ‘두려움의 동등함’이 깨지는 것이다.
중국 군부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떠올릴지 모른다. 1962년 소련이 미국 옆구리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다 핵전쟁 코앞까지 갔던 사건이다.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150㎞고, 평택에서 산둥성까지는 300㎞ 남짓이다. 소련 미사일 R-14는 워싱턴주만 빼고 미국 전역을 사정거리 안에 뒀고, 사드 레이더는 베이징·상하이·다롄 등 중국 동북부 전역을 감시 아래 두고 있다. 소련은 기지 건설을 숨기려고 했으나 위장 수준이 형편없어 미국 U-2기에 들켰지만, 미국은 아예 대놓고 사드를 배치하려고 한다. 케네디가 “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며 90척의 대규모 함대로 쿠바를 봉쇄한 것처럼, 시진핑이 사드 장비를 실은 미국 군함을 막아선다고 해도 이를 ‘강짜 부린다’고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카스트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피그만을 침공하는 등 자신을 제거하려 들자 흐루쇼프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소련이 타협하자 카스트로는 불같이 화를 냈고, 흐루쇼프는 달래느라 경제원조를 대폭 늘려야 했다. 미국으로부터는 ‘무력침공을 하지 않겠다’는 안전보장을 받아냈다. 결과적으로 카스트로는 얻을 건 다 얻었다.
우리는 도대체 뭘 바라는 건가. 사드로 북한 노동미사일을 요격하겠다는 건 얼토당토않은 핑계라 대꾸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 중국과의 무역 규모가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큰 현실에서 너무 위험한 불장난일 뿐이다. 더 한심한 건 불구덩이를 제 발로 기어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하다 보니, 미국의 사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빠진 것이다. 이달 하순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이 두 가지 문제가 결정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부디 남한을 중국의 보복공격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만은 피해주길 바랄 뿐이다.
케네디는 1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그 배경을 연구한 바버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을 읽었기에 사소한 행위가 얼마나 쉽게 대규모 전면전으로 갈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쿠바 위기를 다룬 영화 이라도 한번 보기를 권한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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