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논설위원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결국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이로써 박 대통령의 명예는 온전히 회복되고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한 오해는 깨끗이 해소됐는가? 유감스럽게도 사안의 본질은 별로 크게 변한 게 없는 듯하다. 정아무개씨와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곧바로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했음을 입증하는 보증수표가 되지는 못한다.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에 신경을 쓰지 못한 ‘말 못할 이유’를 둘러싼 수군거림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7시간 미스터리 논란의 불씨를 지핀 김기춘 비서실장의 7월7일 국회 발언 역시 내부 권력투쟁의 관점에서 더욱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비서실장이 대통령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따위의 발언으로 긁어 부스럼을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는 그동안에도 또 다른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최근 기무사령관 및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인사 파동으로 권력 내부 알력설이 불거지면서 김 실장의 발언은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대통령께서는 또 부속실이 있어 가지고요, 저희 비서실도 있지만 또 부속….” 김 실장이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의 문답 과정에서 한 발언의 한 대목이다. 청와대 직제표상 총무비서관, 제1·제2 부속비서관은 모두 비서실장의 지휘계선상에 있는 조직이다. 그런데도 김 실장은 ‘비서실’과 ‘부속실’을 대등한 위치로 표현했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첫째는 총무비서관(이재만), 제1부속비서관(정호성), 제2부속비서관(안봉근) 등이 평소 김 실장의 통제권 밖에 있었음을 공식화하는 것이고, 둘째는 노회하기 짝이 없는 김 실장이 이런 민감한 내용을 공식 석상에서 언급한 것 자체에 뭔가 의도성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박 대통령이 우선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집안 단속이었다. 청와대 내부의 매끄럽지 못한 의사소통, 비서실 조직의 기강 붕괴, 이에 따른 내부 알력이 김 실장의 말 한마디에 응축돼 있기 때문이었다. 내부의 곪은 상처는 결코 산케이 보도에 대한 분풀이 따위로 해소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청와대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고함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김 실장 연말 경질설이니,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인사 전횡이니, 3인방 내부의 분화설 등이 한꺼번에 어지럽게 터져나오고 있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반 국민이 속속들이 알 길이야 없지만 이런 보도들 하나하나에서 치열한 권력다툼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권력투쟁의 속성상 김 실장의 ‘부적절한 해명’ 그 자체도 내부의 새로운 시빗거리로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은 논란을 빚은 국정원 기조실장 사표를 반려하면서 ‘화를 냈다’고 한다. 3인방 인사 전횡이니 비선 인사니 하는 말이 보수언론에까지 활자화되는 상황에 화를 냄 직도 하다. 그렇지만 따져보면 박 대통령은 지금 남에게 화를 낼 계제가 아니다. 현 정권 아래서 기관장들이 자기 조직 인사권 하나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에도 기무사령관 경질과 국정원 기조실장 교체 시도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나 이병기 국정원장의 뜻이었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박 대통령 스스로 비선 인사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내오다 이제 와서 화를 낸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권력은 언제나 치열한 내부 다툼을 속성으로 한다. 특정 세력의 전횡과 국정농단 역시 역대 정권에서 비일비재했다. 그때마다 권력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손사래를 쳤으나 훗날 밝혀진 내용을 보면 그 실상은 훨씬 심각했다. 그 점에서 현 정권은 어느 정권보다 병증이 더 심각해 보인다. 국정운영의 방향을 둘러싼 노선 다툼도 아니고 그저 더 많은 권력을 향유하기 위한 진흙탕 싸움일 뿐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다가온다. 국정운영 실패의 적은 언제나 내부에 있는 법이다. 박 대통령은 ‘남 탓’을 하기에 앞서 더 늦기 전에 내부 정리부터 서두를 일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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