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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검찰총장은 어디 있는가 / 여현호

등록 2014-10-21 18:30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김진태 검찰총장은 독특한 사람이다. 그는 도인 같다. 한때 절에 눌러앉아 반쯤 중으로 살았다니, 책으로만 쌓은 깊이는 아니다. 운동권이라는 말도 들었다. 학생운동과 관련해 몇년간 도피 생활을 했고, 검사 때는 재야인사들과 자주 어울렸다. 총장 물망에 올랐을 때도, 기대와 함께 격렬한 반감으로 평이 엇갈렸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어서 정권이 섣불리 기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꼬장꼬장한 사람이 정권 코드에 맞추기 시작하면 더 위험할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기대와 의심 속에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많은 말을 했다. 그 말대로 했을까.

김 총장은 14일 대검 간부회의에서 “검찰이 하지 않고,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시간 검열’을 우려해 속칭 ‘사이버 망명’이란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달째 계속된 ‘사이버 검열’ 논란에 대한 총장의 첫 언급이었다. 남 일 말하는 듯하다.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는 9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있은 지 바로 이틀 뒤 주요 포털과 카카오톡까지 급하게 대검 청사로 불러 ‘사이버 명예훼손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연 것이, 총장인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투다. 회의에서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사범 등 상시 적발’ 따위 대책을 발표해 결국 일파만파의 검열 논란으로 번지게 한 것도, 애초 검찰의 뜻이 아니었다고 말하려는 듯하다. 그렇게 반성과 성찰이 없으니, 그동안의 혼란을 책임지는 이도 없다. 자신이 한 일을 마치 남 일 말하듯이 한, ‘유체이탈’ 화법의 결과다.

그런 일은 또 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 작전이 한창이던 어느 시점부터 김 총장은 “제대로 보고도 안 받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자신은 선주 쪽을 수사하라고 했는데 인천지검장이 퇴근을 안 하겠다는 둥 ‘오버’를 하기에 믿고 맡겼을 뿐이라는 것이다. 황당하게도 유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뒤, 인천지검장은 사표를 냈고 인천지검 간부들은 좌천됐다. 경찰청장까지 경질됐지만, 검찰총장은 자리를 지켰다. 책임 추궁이 온당했는지는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 사흘 만에 유씨 수사 방침을 발표한 것은 대검이었고, 군경까지 불러 유씨 검거 대책회의를 연 것도 대검이었다. 김 총장은 참사 직후 간부회의에서 “이런 사건에선 ‘돼지머리 수사’가 필요하다”며 ‘표적수사’의 불가피성을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총장의 지시와 의지로 벌인 검거 작전의 책임에서 정작 총장은 빠졌다.

문제는 책임론만이 아니다. 말이 혼과 넋을 잃은 게 더 문제다. 김 총장은 지난해 취임사에서 “치밀하고 정제된 수사”를 강조하면서 “표적수사나 과잉수사와 같은 지적이 없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리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주권자의 의사를 경청해 업무에 반영해야 할 공복의 책무”를 말했지만, 검찰이 신속하게 그 의사를 반영한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이 아니라 대통령의 말 한마디였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총장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말했지만, 대통령과 청와대의 뜻은 버팀목은커녕 한 꺼풀 거름막도 없이 곧바로 일선 검찰에 관철됐다.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기소만 해도, 검찰은 애초 ‘혼만 내고 기소는 않겠다’는 방침이었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최종 결정은 달랐다.

이제 취임사에서 말한 “바르고 당당하면서 겸허한 검찰”은 찾기 어렵다. “법 이전에 스스로 국민에게 책임지는 선비의 모습”도 기대하는 이가 별반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법당의 문고리만 더럽히면서 앉아 있다면, 그게 더 안타까운 일이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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