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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사제와 골프 / 호인수

등록 2014-10-24 18:37수정 2014-10-24 21:48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글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너 이젠 막 나가는구나”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무리 제 맘대로 쓸 수 있는 공간이라도 쓸 게 있고 안 쓸 게 있지, 신도들도 웬만하면 말을 아끼고 못 본 체하는 것을 굳이 건드려 좋을 게 뭐냐는 신학교 동창생의 마뜩잖아하는 눈초리가 눈에 밟힌다. 친구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미운털만 잔뜩 박힐지도 모른다. 해서 많이 망설였다. 정치·사회적인 발언보다 훨씬 더 어렵다.

지방 소도시 성당의 주임으로 있는 친구에게 갔을 때다. 내일 골프 약속이 있다며 밤중에 골프가방을 차 트렁크에 싣는 것을 보고 환할 때 하면 될 것을 왜 밤중에 그러느냐고 했더니 낮에 사람들이 보면 좋을 게 뭐냐고 한다. 그때 나는 그가 은연중에 이웃과 신도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자기가 골프 친다는 것을 내놓고 떠벌리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 선후배 사제들이 신도들과 함께 골프를 치고 저녁 먹는 자리에 우연히 합석한 적이 있다. 신도들은 하나같이 신부님들이 평신도와 함께 어울려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몇번씩 반복했다. 골프비용과 밥값까지 다 그들이 내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자주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골프가 죄인가? 성경이나 교리책 어디에도 그런 가르침이 없으니 죄 될 것 없고 부끄러울 것, 거리낄 것도 없다. 골프는 우리나라에도 동호인들이 급격히 늘어 이제는 거의 대중화되었다지만 돈이 많이 들어 여전히 소수 특권층이나 즐길 수 있는 고급 운동이다. 무턱대고 골프 마니아들을 싸잡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나는 사제에게도 다양한 취미활동이 허락되고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제의 취미가 골프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사제는 특권계급이 아니다. 게다가 넉넉하고 여유로운 생활보다는 가난이 더 걸맞은 사람이다. 암만 봐도 취미로 골프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사람이 아니다. 칼럼을 준비하면서 개신교의 한 언론사 직원에게 목사들 중에 골프 하는 분들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거의 없는 줄 안다고 했다. 불교 관계자에게도 스님들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똑같은 대답이다. 고등학교 교사 한 분도 역시 현직 교사들이 주말이나 방학 때 골프를 한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고 했다. 성직자 가운데 유독 천주교 사제들만 골프 인구가 제법 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골프가 어떤 이에게는 주어진 일의 연장이듯이 사제도 골프를 자신에게 맡겨진 사목활동의 일환으로 보는가? 순진한 발상이다. 설득력이 없다. 독신생활에서 오는 인간적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나름의 묘책? 그럴 수 있겠다 쳐도 그것이 꼭 골프여야 하는 이유는 설명이 안 된다. 요즘처럼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신분 상승을 꾀하는 서민의 처절한 발버둥이라면 이해 못할 것도 없겠으나 우리 사제들 가운데 그렇게 천박한 의식을 가진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한국 교회의 대다수 신도들이 사제의 골프를 탐탁잖게 보는 건 사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그만이다, 라는 사고는 이미 위험의 도를 넘었다. 그러잖아도 교회는 빠른 속도로 사회에서 유리되어 가고 젊은이들은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속속들이 까발리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덮어만 두었던 구체적인 현안들을 이제라도 공개된 마당으로 끌어내어 논쟁거리로 만들자. 골프도 그중의 하나다. 한반도의 복음화는 먼저 교회와 사제의 복음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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