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오후에 ‘최고위원 사퇴 속보’ 관련 얘기를 들었다. ‘속보 홍수 시대’에 정치인 당직 사퇴 소식은 ‘속보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뜬금없는 발표의 속뜻에 모이던 관심은 이내 언어 표현으로 쏠렸다. ‘대통령한테 염장을 뿌렸다’는 게 그것이다. 어느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출연자는 “‘염장 지른다’는 표현은 하는데, ‘염장을 뿌린다’는 건 무슨 말인가?” “‘염장을 뿌린다’는 표현은 없지만, 굉장히 강한 표현”이라며 ‘사퇴 선언’보다는 ‘염장’에 초점을 맞춘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이태 전 국립국어원 누리집에는 “‘염장을 지르다’는 자식이 부모에게 해서는 안 될 표현”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국어비속어사전>(김동언 편저, 1999)에 ‘화나게 하다’라는 뜻의 욕으로 설명해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염장 지르다’를 쓰면 안 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이었다. 여기에 기대면 ‘염장 지르다(뿌리다)’는 어원과 뜻풀이를 떠나 공공 언어로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인 셈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염장’ 표제어 9개를 제시하지만 위 쓰임에 딱 들어맞는 뜻은 없다. 항간에 떠도는 ‘염장(지르다)’의 유래 또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염통(염)+창자(장, 腸)’는 조어가 어색하다. ‘고문할 때 소금(염, 鹽)과 간장(장, 醬)을 상처에 뿌렸기 때문’이라는 설은 ‘상처에 간장 끼얹다’에서 깬다! ‘심복인 염장이 찌른(지른) 칼에 죽은 장보고’를 기록한 <삼국유사>에서 왔다는 주장은 ‘천년의 공백’이 설득력을 잃게 한다. ‘염장 지르다’라는 표현은 1990년대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염장지르다’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가만히 있는 곳을 들쑤시어 괴롭고 힘들게 하다’로 풀이한다. 요즘 청춘의 ‘염장(질)’은 애인 없는 이들에게 보이는(들리는) 애정 표현을 가리킨다. ‘사랑한다’는 말만 100여차례 반복하는 ‘염장송’을 들어보면 뭔 말인지 안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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