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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박 회고록, <진실은 없다>?

등록 2014-11-24 18:40수정 2014-11-25 15:39

이명박 전 대통령(오른쪽)과 부인 김윤옥씨가 10월9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외아들 이시형(36)씨의 비공개 결혼식을 마친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이명박 전 대통령(오른쪽)과 부인 김윤옥씨가 10월9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외아들 이시형(36)씨의 비공개 결혼식을 마친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김종구 칼럼]

‘소설도 자서전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자서전은 어김없이 소설이다’ ‘기억을 잃어버렸거나 기억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회고록을 쓴다’ ‘자서전은 마지막회분만 남긴 시리즈 형태의 부음 기사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에 대한 이런 촌철살인의 경구들은 특히 유명 정치인들의 경우 더 공감을 자아낸다. ‘공’은 부풀리고 ‘과’는 숨기는 식상한 자서전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그나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나의 인생>이 225만부가 넘게 팔린 것은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 사생활을 나름대로 솔직히 털어놓은 덕분이다.

“인간의 기억은 현재의 이해관계에 따른 과거의 왜곡이 될 수밖에 없다.”(폰 브로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년 초 회고록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맨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사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집필 시기는 역대 대통령들의 예에 비춰보면 무척 이른 편이다. 시기적으로도 ‘4자방’ 국정조사 문제 등으로 매우 미묘한 시점이다. 굳이 이 시점에서 회고록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말 그대로 회고록이 ‘현재의 이해관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뭐니뭐니해도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다. 2007년 당내 경선에서의 승리 과정, 재임 기간 동안의 끊임없는 밀고 당기기, 그리고 2012년 대선을 앞둔 ‘보험 들기’ 등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소재는 널려 있다. 이런 내용들이 ‘비화’ 중심으로 소상히 담긴다면 ‘엠비 자서전’은 아마 클린턴 자서전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자서전에 박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과거 수집했던 박근혜 엑스파일 활용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는 등의 협박성 발언도 동시에 나온다. 청와대를 겨냥한 고도의 심리전이 느껴진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살아 있는 권력을 움직이려는 죽은 권력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회고록을 4자방 사업 변호 등 ‘과거의 왜곡’ 수단으로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회고록을 쓰겠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교묘한 정치적 행보인 셈이다. 따라서 회고록이 내년 초에 꼭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어떠한 삶이든 내적인 관점에서 보면 패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조지 오웰) 이 전 대통령만큼 재임 기간 ‘수치스러운 일’이 많았던 전직 대통령도 근래에 흔치 않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비롯해 내곡동 사저 땅 문제에 이르기까지 반성하고 참회할 내용이 많다. “만약 내가 자서전을 쓰면 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할 것”이라는 위트 넘치는 말을 한 작가도 있지만, 진실을 제대로 기록하기로 치면 이 전 대통령이 ‘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싶은 항목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내용을 언급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인다. 책은 그 사람의 거울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장 시절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펴낸 바 있다. 이번 회고록에 진실을 담지 않을 요량이라면 ‘자서전 속편’ 제목은 <진실은 없다>로 정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독자가 아닌 자기 자신과, 자신을 어여삐 봐줄 먼 훗날 역사 기록자를 위해 주절대는 한 남자의 소리.” 클린턴 전 대통령 자서전에 대한 <뉴욕 타임스> 서평의 일부다.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이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 경제위기 극복이니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최니 하는 자신의 ‘치적 자랑’에 그친다면 장차 나올 서평도 이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정치인의 자서전은 종이 뭉치에 불과하다. 변기 화장지와 다른 점은 두루마리가 아니라는 점 뿐”이라는 신랄한 말도 있는데,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과연 이런 혹평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미리 쓰는 서평’이 ‘저자’로서는 너무 모욕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런 예상 서평이 보기 좋게 빗나가게 한번 제대로 된 회고록을 써보시기 바란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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