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입시철이다. 수험생 수십만명이 마음을 졸이고 있겠다.
2010년 기준 대학진학률은 83.8%란다. 1970년엔 진학률이 26.9%였으니 세 배쯤으로 불어난 숫자다. 중·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당시엔 초등학교 졸업자 가운데 66.1%가 중학교에 갔고, 중학 졸업자 중에선 70.1%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반면 1990년 이후 중·고등학교 진학률은 거의 100%가 돼 버렸으니, 대강 다듬어 계산하자면 1970년엔 12% 선이었던 대학진학률이 요즘엔 80% 수준이 됐다는 뜻이 된다. 대략 일곱 배다.
인구 변동은 제쳐두고 생각해 보자. 한 명이 덤볐던 판에 일곱 명이 덤빈다…. 그것만 해도 쉽지 않은데 대학문은 좁아졌다. 진학률이 높아졌는데, 1970년에 비해 대학 입학 정원은 열 배나 늘어났는데 대학문이 좁아졌다니 무슨 말이냐고? 1980년대를 기준으로 하면 그렇잖겠느냐는 뜻이다. “우리가 대학 간 건 다 전두환 덕이지.” 선후배들과 종종 이렇게 주고받는데, 과연 그렇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발표된 7·30 조치는 당시 중·고등학생들을 과외에서 해방시켰고 대학 정원을 순식간에 늘려놓았다.
1980년에 약 20만명이었던 입학 정원이 1981년에 약 30만명으로 늘어났다는 건 사태의 일면에 불과하다. 서울시내 대학의 정원 증가 현상은 몇 배나 더했다. 1980년에 660명을 뽑았던 서강대의 경우 1981년에 1770명을 모집했다고 한다. 내가 졸업한 학과는 20명 정원이었던 것이 1980년대 초반 한때 근 100명을 뽑았다고 들었다. 1980년대 중·후반이 되면 정원도 줄고 혼란도 덜해졌지만, 어쨌거나 1960년대생은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세대다.
숫자를 늘어놓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 요컨대 수능시험을 본 당신은 당신 부모와 전혀 다른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대학 들어가기가 이렇게 어려워졌나.” 부모의 말을 탄식 겸 힐책으로 들은 일이 있다면, 실제로 현실이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우리’다. 대학을 바꿔내지 못하고, 대학에 가야만 하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우리’는 속절없이 40~50대 중년이 되어 속을 끓인다. 이건 아닌데,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이른바 명문대에 입학하면 무슨 일이 생기나? 평범한 인재를 환골탈태시켜 줄 만한 마법의 효과를 그런 학교가 발휘할 수 있나? 그러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바람과 먼 거리에 있는 듯하다. 명문대 나오면 학점 2.0을 꿰차고도 어지간한 기업에 들어갈 수 있던 시절도 진작에 갔다. 20대 초반에 함께 뒹굴며 사귄 친구들이 평생 보험이 돼 준다는 미담 혹은 부조리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나도 내 자식이 장차 명문대에 가길 바란다. 외국 대학으로 직행하는 코스는 잘 모르겠지만 국내에서 모모한 대학 정도는 쑥 들어가 줬으면 싶다. “이번에 ○○대학 ○○학과에 입학했어요. 뭘요….” 뿌듯한 마음으로 이런 대사를 소화해 보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명문대 외 다른 대학을 졸업한다는 건 자격이라기보다 결격 사유에 가까우니까. 4년 후는 4년 후, 어쨌거나 명문대라는 타이틀은 당장의 루저 대열에서 내 자식을 구제해 줄 테니까 말이다.
써 놓고 나니, 수능시험을 본 당신에게 부칠 수 있는 말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시절 나도 답답했기에.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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