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정윤회 문건’ 사건과 관련된 뉴스들을 보면서 머리 안에 물음표가 꼬리를 물었다. 청와대는 문건이 불거지자마자, 문건에 등장하는 청와대 관계자가 언론사를 고소하는 형식을 빌려 검찰에 넘겼다. 문건 내용이나 작성 경위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은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이게 그렇게 덥석 검찰에 넘길 사안인가? 왜 청와대는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않고, 자체 감찰도 하지 않는 거지? 해봤자 국민이 안 믿을 것 같아서? 그러니 일찌감치 검찰에 맡기자?
그런데 문건 내용대로 정윤회씨가 청와대 ‘3인방’을 만났다면 그게 정치윤리상 비난받을 행위는 될지언정 그 자체로 범죄행위는 아니지 않은가? 범죄행위가 아닌 걸 검찰이 수사한다? 물론 당사자들이 안 만났다고 하면서 명예훼손 혐의로 신문사를 고소했으니까,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면서 만났는지 여부도 조사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소인 조사이지 피의자 조사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혐의를 찾기보다 진상규명이 우선이기 쉽다. 어딘지 편법처럼 느껴지는데, 왜 사람들은 그런 말을 안 하고 검찰 수사를 재촉할까?
십여년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를 수사할 때가 생각난다. 김영삼 대통령 말기에 현철씨가 한보그룹 비리 사건의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검찰은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현철씨가 비선조직을 통해 국정을 좌지우지한다는 소문과 보도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검찰은 그를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사안을 두고 그 수사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당장 범죄의 혐의가 없어도, 고소인이라 해도, 수사하면 어떤 혐의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실제로 검찰 수사가 약간의 편법을 감수하면서 여론의 괘씸죄를 산 권력자를 사법처리한 경우가 있다. 또 범죄수사라기보다 진상조사에 가까운 수사에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가서 겨우 면피하거나 비난만 뒤집어쓰고 만 경우도 있다. 이번 사안도 그중 하나가 될 텐데, 어딘지 자꾸 불안해 보인다.
관련자 대다수가 청와대 관계자이고, 청와대 안에서 벌어진 일인데, 청와대의 이렇다 할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바로 검찰로 넘어가도 되는 건가. 문건이 유출되기까지엔 불법행위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작 의혹의 핵심이 되고 있는 정씨의 국정 개입 여부는 당장 불법행위로 보기도 힘든데 말이다. 검찰이 청와대의 감찰실은 아니지 않은가.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 말을 보니 불안함이 더 커진다. 박 대통령은 “검찰은 내용의 진위를 포함해 이 모든 사안에 대해 한점 의혹도 없이 철저하게 수사해 명명백백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혀주기 바란다”고 하면서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를 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같이 몰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검찰 수사를 지켜볼 일이지만, 최근 여러 사안에서 검찰 수사의 정치적 독립성과 관련해 신뢰가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결국 검찰에 넘기더라도, 청와대는 자체 조사와 해명을 거친 뒤에 넘기는 게 검찰의 대국민 신뢰도를 고려할 때 좀 더 바람직한 태도 아니었을까.
문건을 보도한 신문사가 명예훼손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근거도 희박하다. 청와대 직원이 작성했고,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된 문건을 보도한 행위가 명예훼손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보도의 자유는 크게 위축되지 않을까.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를 하면서’라는 대통령의 말이 검찰 수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바란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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