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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대통령 되겠다면 이동헌군에게 답하라 / 박용현

등록 2014-12-09 18:35

박용현 논설위원
박용현 논설위원
지난 주말 한 입시업체의 대입 설명회는 인산인해였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설명회는 정신을 쏙 빼놨다. 수능 영역별 반영비율, 변환표준점수, 가·나·다 모집군의 대이동, 충원 합격의 비밀…. 난해한 셈법과 고난도 지원 전략이 강사의 현란한 언변을 타고 쏟아졌다. 수능이 ‘실력’ 대신 ‘운’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전락했다고들 개탄하는데, 대입 설명회에서 느낀 것은 수백, 수천의 변수가 얽힌 대입 자체가 이미 ‘복불복 요지경’이라는 점이다. 오죽하면 수십만~수백만원짜리 컨설팅까지 받아가며 지원 대학·학과를 고를까.

그렇다면 차라리 추첨으로 뽑으면 어떤가. 네덜란드는 경쟁 없는 개방형 대입이지만, 지원자가 몰리는 의학계열 등은 추첨을 한다. 상위권 학생일수록 당첨 확률을 높여줌으로써 ‘실력’이란 요소를 가미한다. 그래도 불만이 나오는지라, 2000년부터는 정원의 50%를 먼저 시험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이렇게 뽑은 학생들이 추첨 입학생들보다 학업 성취가 뛰어나지 않았다. 상당수 대학은 다시 시험을 폐지했다. 독일에는 정원의 20%를 ‘지원한 지 오래된 순서’로 뽑는 전형도 있다. 생경한 제도라고 치부할 게 아니라, 거기에 숨어 있는 사회·철학적 배경을 곱씹어볼 일이다.

수능과 같은 전국적 시험이 ‘공정하다’는 믿음도 신화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 달에 수백만원씩 들여 ‘대입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학생과 급식비조차 낼 형편이 안 되는 가정에서 자란 학생이 공정한 경쟁을 치른다고 말하는 것은 저 누가 즐겨 하는 ‘유체이탈 화법’이다. 비슷한 조건에서 이뤄낸 성취를 보여주는 내신이야말로 공정한 평가방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신으로만 선발하면 어떤가. 미국 텍사스주는 1997년 ‘톱 10% 법’을 도입했다. 각 고등학교의 상위 10% 졸업자를 인기 있는 주립대학들에 우선 입학시켜 주는 제도다. 캘리포니아주도 비슷한 제도를 두고 있다. 우리로 치면 ‘강남’ 같은 곳에선 불만이 있을 터, 2012년 위헌 소송이 제기됐다. 하지만 연방대법원까지 오간 끝에 지난 7월 합헌이라는 결론이 났다.

현재의 입시로는 진정한 잠재력을 평가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입시 전문가이자 인간지능 연구의 권위자인 로버트 스턴버그 코넬대 교수는 인재의 조건으로 ‘분석·창조·실용 지능’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지혜’를 제시한다. 전통적인 시험은 분석 지능 한 가지만 평가할 뿐이란다. 그는 창조·실용 지능과 지혜까지 평가하는 대안 시험을 개발해 미국 터프츠대 입시에 적용했다. 그랬더니 소외계층 학생들의 합격률이 저절로 높아졌다.

어느 하나의 대안이 100%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대학 개혁과 노동·복지 시스템 개편이라는 여러 난제와도 맞물려 있다. 복잡하지만 풀지 못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고교 평준화, 대입 본고사 폐지, 과외 금지 등 굵직한 교육개혁의 기억을 갖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를 주도한 건 독재자들이었다. 하물며 주권자들의 민주적 결단으로 이 피폐한 교육 현실을 개혁하는 게 왜 불가능한가.

미래의 인재들이 쓸모없는 경쟁에 매달리느라 창의성을 고갈시키고 공동선의 지혜를 배우지 못한다면 나라의 미래 또한 암울하다는 게 스턴버그 교수의 문제의식이다. 이번에 수능 만점을 받은 부산 대연고 이동헌군도 똑같은 말을 했다. “입시 경쟁으로 인해 개성이 매몰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지 못”하는 이 시스템을 바꾸고 싶단다. 2017년 대선을 준비하는 정당·주자들은 지금부터 사명감을 갖고 그 답을 찾아가기 바란다. 아마추어 대통령의 급조 공약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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