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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그들은 ‘9인의 현자’인가 / 여현호

등록 2014-12-23 18:44수정 2014-12-24 12:16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1726)는 법률가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도 유명하다. 걸리버의 마지막 여행인 4부 ‘말들의 나라 휘넘으로의 기행’의 제5장은 변호사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이어 재판관을 꼬집는다. “국사범으로 기소된 사람들에 대한 재판 방법은 너무나 짧아서 과히 칭찬할 만하다. 재판관은 먼저 권력자들의 기분을 살펴보고 난 다음에 모든 법률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간단하게 그들을 교수형에 처하거나 살려줄 수 있는 것이다.”

권력자의 눈치나 보는 타락한 재판관 대신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하는 법관이 바로 근대 사법의 이상이었다. 그런 이상형에 가까운 모습이 아마 미국 연방대법원일 것이다. 연방대법관 9명은 ‘9인의 현자(賢者)’로도 불린다. 연방대법원이 가장 신뢰받는 국가기관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것은, 이들 대법관이 탁월한 법률지식과 논리에 더해 시대와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철학으로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는 믿음이 쌓여왔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항상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역사를 전진시킨 명판결들도 있지만, 남북전쟁의 비극을 불러온 “흑인 노예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판결(1856)이나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핍박을 정당화한 판결(1944) 등 두고두고 비판을 받는 판결도 적지 않다. 대법관들이 법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정치신념과 이념에 따를 뿐이라며 ‘법복을 입은 정치인’이라고 폄하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연방대법원 판결이 존중받는 것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 대법관들의 치열한 토론의 결과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9명으로 구성된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그런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가. 지난 십몇년 동안 헌재 재판관은 대부분 고위법관이나 검찰 고위직으로 채워졌다. 법조계에서는 재판관 자리를 이런저런 이유로 대법관이나 검찰총장 등에 오르지 못한 이들을 배려하는 자리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색이 강한 이들이 대부분이니, 국민의 뜻을 여론 지형에 맞게 반영하지도 못한다. 당대의 ‘현자’라고 수긍하기는 여러모로 쉽지 않다.

이는 우리 헌재가 민주적 통제와는 전혀 무관하게 구성되는 데서 비롯된다. 헌법은 대법원장뿐 아니라 대법관들도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선거를 거치지 않았다는 민주적 정당성의 부재를 국회와 대통령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간접적으로라도 메운다는 취지다. 하지만 헌재에 대해선 소장 임명만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국회법도 재판관 9명 중 국회에서 선출하는 3명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했을 뿐,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6명은 국회 동의와는 무관하게 임명된다. 6명이면 위헌 결정의 정족수다. 그런 숫자를 국회와는 아예 무관하게 임명되도록 했으니, 멀리 있는 국민보다 눈앞의 지명권자와 임명권자의 뜻을 더 의식하게 된다. 국가권력의 권력 남용에 맞서 할 말을 힘있게 다 하리라고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모습이라면 ‘법복을 입은 정치인’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과한 듯하다. 오히려 ‘다음 자리’를 찾는 ‘사법 관료’라는 표현이 거칠지언정 더 정확해 보인다.

지혜와 용기를 지닌 ‘9인의 현자’가 이끄는 최고사법기관은 이상형이다. 그 결정이 불만스러워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원칙이다. 그러자면 먼저 지혜와 용기를 다할 수 있도록 헌재를 구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헌법이나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헌재 재판관 전원의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이 옳다. 권력의 심기를 살핀 탓인지 수십년 쌓인 선입견 때문인지 몰라도 엉성하게 엮은 결정을 서둘러 들이미는데도 무작정 고개를 주억거릴 수는 없지 않은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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