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미래세대의 절망, 기성세대의 재앙 / 박순빈

등록 2014-12-25 18:38

박순빈 논설위원
박순빈 논설위원
1970년대 초중고 학생들은 존재 자체가 죄스러웠다. 교실에 버젓이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표어는 점점 험악해졌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더니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둘도 많다!’라는 좀더 직접적인 표현으로 바뀌었다. 1986년에는 정부가 한 자녀 가정에 여러 가지 혜택을 주고 다자녀 가정에는 주민세와 의료보험 추가 부담 등의 불이익을 안기겠다는 정책까지 내놓았다.

출산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정책 기조는 30여년 만에 자발머리없이 확 달라졌다. 낮은 출산율이 앞으로 가정이건 국가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요즘 관공서에 가보면 ‘이집저집 아기웃음, 행복퐁퐁 희망쑥쑥’이라는 구호가 나부낀다. 그럼에도 이집저집 아기 웃음소리는 시나브로 줄어들기만 한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무엇보다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웃 일본의 경험을 보면, 저출산·고령화의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크다. 저출산·고령화가 경기침체의 장기화를 유발하고, 경기침체의 장기화는 다시 저출산·고령화를 가속화한다. 악순환의 덫에 빠지는 것이다. 이 덫의 가공할 위험은 일단 걸리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일본만큼 심각한 고령사회에 이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가 훨씬 빠르다. 특히 고용구조로 봐서는 이미 위험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고령화에 따른 저성장의 악순환은 몇 해 전부터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30살 미만의 청년층 고용률은 사상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다. 올해 들어 조금 높아지긴 했으나 겨우 외환위기 때 수준이다. 다른 연령 계층과 비교한 청년층의 고용 사정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빠졌다. 전체 취업자에서 청년층 비중이 1998년에는 23.7%였는데 올해 11월 현재 기준으로는 14.9%에 불과하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는 청년층 취업난이 세대간 갈등까지 유발하는 양상이다. 그동안 세계 금융위기를 그럭저럭 벗어나고 미약하나마 성장세를 유지하긴 했다. 2013년 기준으로 전체 일자리(취업자) 수도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보다 163만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20대 일자리는 같은 기간 42만이나 줄었다. 대신 50대와 60대의 일자리가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20대에 견줘 50대, 심지어 60대까지 고용률이 더 높은 역전 현상까지 벌어졌다. 장년층과 노인층이 청년층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그게 아니다. 자녀 세대의 앞날이 캄캄하니까 부모세대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스스로 노후를 준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년층의 일자리 빈곤은 현재 취업해 있는 기성세대에게도 불안의 징조다. 국민경제 전체로도 저출산·고령화를 가속화해 결국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저출산·고령화와 저성장의 장기화, 재정여건 악화 등은 모두 청년실업 문제와 밀접한 상호 연관성이 있다. 이를 해결하는 데 정부의 모든 정책 역량이 집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청년 일자리의 질만 떨어뜨릴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정규직 과보호 해소, 이민 확대를 통한 노동력 부족 해소니 하는 대책에서 그런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문제를 발견했으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문제를 덮기에 급급하거나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는 문제적 정책들만 쏟아내고 있다. 미래세대의 절망은 기성세대의 재앙일 수밖에 없다. 재앙을 막으려면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좀더 많은 기회와 좀더 확실한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